예수님 또한
우리 보다 앞서 갖가지 유혹을 당하신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에 넘어간 것과 달리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제2의 아담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당하신 유혹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는, 식욕이다.
단식으로 허기져 있을 때 가장 큰 유혹은 음식의 유혹이다.
마귀는 바로 빵으로써 예수님을 유혹한다.
식욕은 이렇게 모든 유혹의 첫번째의 것이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은 수도자 자격이 없다>고 하신
어떤 성인의 말이 기억난다.
40대에 가장 신경써야 할 미덕이 <절제>라고 읽었다.
사실 소식하고 음식을 절제할 수 있어야만
모든 욕심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사순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식탐에서 해방되어
영적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기에 거룩한 시기이다.
둘째 유혹은 소유욕이다.
음식으로 배가 부르게 되면 그 다음으론 소유욕이 발동한다.
우리가 배고플 때는 없이도 잘 살았는데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니 엄청난 소비주의가 발동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식욕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소유욕으로 넘어가게 된다.
소유욕은 끝이 없다.
비단 큰 집이나 자동차, 물건 등에 대한 소유욕만이 아니라
자식이나 사람에 대한 소유욕도 문제이다.
50대는 특히 이 소유욕을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소유욕에서의 해방을 통해 더욱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50대 신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셋째 유혹은 권력욕(명예욕)이다.
사람이 먹는 것이 해결되고
덧붙여 돈도 많이 벌어 가질 것은 다 가져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발동하는 것이 이 권력욕(명예욕)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을 보라!
대부분이 이런 전철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정치가들이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노름에
기대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탐욕 덩어리의 사람들 앞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란 사실 기대할게 못된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돈많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도 무슨 장(長)자리라도 하나 해보려고
덤비는 미성숙한 모습들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미성숙한 욕심을 지닌 장을 맡은 신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이들이 그 장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면
이상한 싸움박질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60대 신자들이 조심해야 할 유혹이다.
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유혹을 받으신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당하게 될 유혹들을 미리 보여주시고
어떻게 이런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지
그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이 유혹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무서워해야 한다.
내 안에 어떤 유혹이 이미 도사리고 있는지 잘 살펴보자.
나는 어떤 음식이든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미하며 먹고 있는가?
쓸데없는 음식투정을 부리거나 맛있는 음식만 먹으려는
미식가, 탐식가는 아닌가?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때문에 안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 없어도 될 것인데도 소유욕 때문에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도 많이 사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남들보다 윗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회장님, 단장님 등
장 소리를 듣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상류층의 부류에 속하기를 바라고
아니 그런 이들과 친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가 높아졌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우리가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빠졌던 그 뱀의 유혹에 다시 빠지는 길이고
이것을 의식하고 과감히 물리칠 때
예수님처럼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느님 나라는
이러한 욕심이 없는 나라이리라.
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소명이라면
우리 먼저 이러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아멘.
우리 보다 앞서 갖가지 유혹을 당하신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에 넘어간 것과 달리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제2의 아담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당하신 유혹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는, 식욕이다.
단식으로 허기져 있을 때 가장 큰 유혹은 음식의 유혹이다.
마귀는 바로 빵으로써 예수님을 유혹한다.
식욕은 이렇게 모든 유혹의 첫번째의 것이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은 수도자 자격이 없다>고 하신
어떤 성인의 말이 기억난다.
40대에 가장 신경써야 할 미덕이 <절제>라고 읽었다.
사실 소식하고 음식을 절제할 수 있어야만
모든 욕심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사순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식탐에서 해방되어
영적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기에 거룩한 시기이다.
둘째 유혹은 소유욕이다.
음식으로 배가 부르게 되면 그 다음으론 소유욕이 발동한다.
우리가 배고플 때는 없이도 잘 살았는데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니 엄청난 소비주의가 발동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식욕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소유욕으로 넘어가게 된다.
소유욕은 끝이 없다.
비단 큰 집이나 자동차, 물건 등에 대한 소유욕만이 아니라
자식이나 사람에 대한 소유욕도 문제이다.
50대는 특히 이 소유욕을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소유욕에서의 해방을 통해 더욱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50대 신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셋째 유혹은 권력욕(명예욕)이다.
사람이 먹는 것이 해결되고
덧붙여 돈도 많이 벌어 가질 것은 다 가져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발동하는 것이 이 권력욕(명예욕)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을 보라!
대부분이 이런 전철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정치가들이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노름에
기대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탐욕 덩어리의 사람들 앞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란 사실 기대할게 못된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돈많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도 무슨 장(長)자리라도 하나 해보려고
덤비는 미성숙한 모습들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미성숙한 욕심을 지닌 장을 맡은 신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이들이 그 장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면
이상한 싸움박질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60대 신자들이 조심해야 할 유혹이다.
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유혹을 받으신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당하게 될 유혹들을 미리 보여주시고
어떻게 이런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지
그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이 유혹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무서워해야 한다.
내 안에 어떤 유혹이 이미 도사리고 있는지 잘 살펴보자.
나는 어떤 음식이든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미하며 먹고 있는가?
쓸데없는 음식투정을 부리거나 맛있는 음식만 먹으려는
미식가, 탐식가는 아닌가?
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때문에 안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 없어도 될 것인데도 소유욕 때문에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도 많이 사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남들보다 윗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회장님, 단장님 등
장 소리를 듣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상류층의 부류에 속하기를 바라고
아니 그런 이들과 친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가 높아졌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우리가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빠졌던 그 뱀의 유혹에 다시 빠지는 길이고
이것을 의식하고 과감히 물리칠 때
예수님처럼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느님 나라는
이러한 욕심이 없는 나라이리라.
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소명이라면
우리 먼저 이러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