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연중 32 주일의 주제는 참된 봉헌입니다.
복음에서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얘기고,
1독서는 엘리야에게 가진 빵 전부를 봉헌하는 얘기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봉헌에 대한 묵상에 앞서
하느님 현존 의식과 하느님 현전 의식을 더 묵상케 되었습니다.
왜냐면 부자들 대부분이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보라고 봉헌하였음에 틀림없지만
과부는 절대로 체면 때문에 봉헌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사람들이 보는 것을 의식했다면
숫제, 아예,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거친 표현을 저도 쓴다면
그 얼마 안 되는 헌금을 어떻게 쪽 팔리게 낼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많이 내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아예 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므로 과부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의식치 않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녀의 봉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봉헌입니다.
사실 그녀의 삶에서 사람에게 덕본 것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과부인 것 때문에 무시하고,
그녀가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은 모욕과 수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바라는 것이 없는데 보이기 위해 할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이렇게 바라는 것이 없을 때 아무 것도 없어도 인간은 당당하고,
하느님 앞에 있으면 더 당당한 것입니다.
물론 이 당당함은 하느님께 당당하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도 우세하며 당당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 가난한 과부에게 겸손과 낮음은 기본이기에
쫄지 않는다는 면에서 당당함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겸손한 당당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겸손한 당당함,
이것이 인간 됨됨이 면에서나 영적 성숙 면에서나
제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경지이고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 주일 미사에 가셔서 헌금봉헌을 하실 때
이런 과부처럼,
이런 과부의 마음으로 여러분도 봉헌을 하시고,
돌아오실 때에는 봉헌 받으신 주님께서 보답으로 주신 사랑
가득 담고 뿌듯하게 돌아오시게 되기를 비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