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요한 18,37)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당신이 임금이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말씀일까, 아니면 인정하는 말씀일까요?
그도 아니면 부인도 인정도 아닌, ‘니들이 알아서 생각하라’는 말씀일까요?
오늘 복음이 요한복음이기에 요한복음 전체를 놓고 볼 때
예수님은 당신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도망치셨잖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다.”(6,15)
아무렴 주님께서 이 세상의 임금이 되려고 하셨겠습니까?
판관기를 보면 왕이 돼달라는 요청에 가시나무만 응한 얘기가 있잖습니까?
이 세상의 왕이란 이렇게 가시나무 같은 자나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조무래기들의 왕초가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고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오히려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신이 왕이 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것이고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빵의 기적을 본 후 왕으로 모시려고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라면 어떤 이유입니까?
세상에서 한 자리를 얻거나 내 배 채워줄 분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실 분이기에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오셨으니
그분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종이 되고 신하가 되려 함도
바로 하느님 나라 건설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왕이신 하느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첫째로 그것은 당신이 왕이라 하여 당신 뜻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 하느님 뜻대로 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순종의 공동체이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기에 또한 서로의 뜻을 받드는 섬김의 공동체이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바꿔 말하면 진리와 생명의 나라로 가는 길이 바로 당신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오늘 미사 감사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이고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그래서 정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가 아니라 자기의 정의입니다.
우리는 종종 독선적으로 정의를 얘기함으로써 사랑을 거스르는데
그렇게 해서는 하느님의 정의도 하느님 나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도 생각해야 합니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정의롭지 않은 평화도 평화가 아닙니다.
정의, 특히 공정에 어긋나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이익집단이나 깡패집단의 자기들끼리의 사랑이니
그런 사랑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를 도저히 이룰 수 없겠지요.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 우리 공동체들이
정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을 꿈꿉니다.
개꿈, 헛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