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실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곧 사제품을 받게 될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하찮게 여기실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기름을 바르시어 당신의 사제로 삼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만 치면 하찮습니다.
능력으로 봐도 하찮고, 됨됨이로 봐도 하찮고, 출신으로 봐도 하찮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기름을 바르시면 여러분은 축성된 사제들이고,
하느님께서 뽑으시어 쓰시면 소중하고 꼭 필요한 분들입니다.
그러니 어제 남을 쓰레기로 만들지 말고 하느님으로 받들라고 했듯이
부디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도 자중자애自重自愛 하시기 바랍니다.
자중자애 하라는 말은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사랑하라는 뜻으로
옛날 집안의 어른이 자녀에게 신신당부할 때 많이 쓰던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피정을 마치며 선배로서 여러분에게 이 당부를 하는데
먼저 자중自重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자중이란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과
행동거지에 있어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의 두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의 사람인데 여느 사람인 양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주님의 사제인데 직업인인 양 자기 정체성이 잘못돼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한 것은 사제가 지녀야 할 덕목이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사람,
주님의 사제로서의 정체성과 품위를 낮추거나 포기하는 거여서는 안 됩니다.
다음으로 자중한다는 것은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행동을 신중愼重하게 함은 물론이고 그 이상을 말하는 겁니다.
욕심이나 감정에 이끌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며
무가치한 일이나 악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가치가 떨어지는 일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사울이 많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전리품을 챙긴 것 때문에 왕에서 쫓겨날 거라는 말을 듣는데
전리품을 챙긴 것이 자기 딴에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물을 바친다는 핑계로 전리품을 챙긴 것을 아시고,
그것으로 당신께 제물을 바친다는 것을 역겨워하십니다.
도둑질하고 노략질한 것으로 제물을 바치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버려라.”고 하셨는데
당신이 세우신 임금이 죄악과 싸우지 않고 고작 전리품을 위해 싸웠으니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도적떼의 괴수로 만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애自愛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자애는 우리가 보통 안 좋은 뜻으로 쓰는 자애심自愛心과 다른 겁니다.
자애심은 보편적인 사랑에서 빗겨난 사랑이요,
배타적으로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기애(Narcissism)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애自愛는 누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 자식을 자기는 팽개쳐버리고 남이 챙겨주기를 바란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짓을 너무도 흔히 자신에게 하곤 합니다.
자기는 자신을 비하하고 학대하면서 남은 자기를 존중해주기를 바라고,
존중해주지 않을 때 자존심을 내세우며 남에게 불같이 화를 내곤 합니다.
자기를 진정 사랑할 때 남도 나를 사랑해줍니다.
자기 텃밭에 꽃을 심어놓으면 사람들이 그 꽃밭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텃밭에 쓰레기를 버리면서
남이 텃밭을 아껴주기를 바란다면 누가 그리 하겠습니까?
자신을 주님의 사제로 사랑할 때 남도 나를 주님의 사제로 존경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