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칼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처세술의 한 편을 배웠는데 이름하여 “까짓것 처세술”입니다.
다윗이 용맹한 골리앗을 보고도 “까짓것” 함으로써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제 지론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도 큰일로 만들어 해결치 못하고,
어떤 사람은 큰일도 작은 일로 만들어 해결을 합니다.
그렇지요.
어린이가 큰일을 해결할 수 없듯이 큰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큰일이 아니고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본래 작은 일인데 큰일로 키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입버릇처럼 ‘이거 큰일이네’ 함으로써
자신을 별거 아닌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어린아이로 만들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는 웬만한 것은 다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지요.
어린 자식에게 나는 뭐든 해결해야 할 어른이어야 하듯이
나 자신에게도 뭐든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어리광 심리가 있습니다.
혼자 일어날 수 있는데도 누가 와서 일으켜 주길 바랍니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데도 문제가 너무 커 해결할 수 없고
누군가 와서 나대신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우리 안에는 이런 어리광 심리가 어느 정도 다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하거나 고질이 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치료가 필요한데 심리정신적인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신앙인이라면 영적인 치료를 우리는 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치료?
예, 영적인 치료란 제가 이름붙이기를 다윗의 치료법입니다.
어제 사무엘기 끝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16,13)
악령은 우리를 두려움에 몰아넣고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린아이로 우리를 만듭니다.
자기 하수인으로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인 우리는 다윗처럼 성령을 모심으로
두려울 것이 없고 성령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모시기만 하면 말입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밤새도록 씨름할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시지만 제자들은 악령인 줄 알고 두려움에 떱니다.
그때 주님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고 하시고, 그제야
제자들은 주님을 배에 모셔 들이려 하지만 배는 금세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어른들은 창칼을 든 거인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어린이가 되었지만
어린 다윗은 주님의 이름으로 창칼을 든 어른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영적 어른이라면 오늘 우리가 만날 모든 골리앗들을
“까짓것”하며 물리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