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사울이 물리치지 못한 골리앗을 다윗이 물리치자
사람들은 사울보다 다윗을 더 칭송하고
그로 인해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남의 얘기이기에 사울을 좀생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하면 사울보다 더 시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영적으로 더 성숙하지 않으면 분명 더 시기하고 질투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의 영적인 미성숙함을 솔직히 고백하면
저도 간혹 저희 수도원보다 다른 수도원에 더 많은 성소자가 입회하고
더 훌륭한 성소자가 입회를 하면 시기심이 생기고,
저희 수도회보다 다른 수도회가 더 훌륭한 일을 하고 더 잘하면
시기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내 어느 수도회든지 잘하면 하느님과 교회 전체적으로 유익이니
참으로 잘된 일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으려 하지만 부끄럽게도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기서 시기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합니다.
하나는 하느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성에 대한 성찰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사랑 결핍증상에 대한 성찰입니다.
첫째는 시기와 자기중심성의 관계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시기는 자기중심성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기하지 않기 위해 너 중심적이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나 중심도 너 중심도 아닌 하느님중심이어야겠지요.
프란치스코는 시기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누구든지 주님께서 자기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보고
그 형제를 시기하면, 모든 선을 말씀하시고 이루어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
자신을 시기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선은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하시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하도록 되어있는 것이기에
모든 선은 너든 나든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닌, 곧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는 시기와 하느님 사랑 결핍 증상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의 선행을 시기하는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분히 만족한 사람이라면 시기하지 않을 겁니다.
내 배가 충분히 부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많이 먹건 맛있는 것을 먹건
시기하지도 않고 시비 걸지도 않듯이
우리도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시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기한다면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하지 못하거나
하느님 사랑으로 충분히 만족하다가도
하느님이 다른 사람도 사랑하시는 것을 보는 순간
하느님 사랑을 뺏긴 것처럼 느끼고 그만큼 결핍을 느낄 때 시기하는 겁니다.
혼자 사랑받던 아이가 동생을 보는 순간
사랑의 상실감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이렇듯 독점적인 사랑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다른 것은 다 나눠줘도
사랑만은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으려는 그 독점욕을 비워야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지도 질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