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 다해 찬미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사무엘기와 열왕기에서 다윗에 대한 얘기를 다 들려준 다음
교회의 전례는 다윗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집회서 말씀을 들려줍니다.
어린 나이에 골리앗과 대적한 위대함에서부터
이스라엘을 안정궤도에 올려놓기까지의 위대함을 칭송합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면 백성을 평안케 하는 것이 최고의 임금이지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편안케 하는 임금.
우리나라가 이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집회서는 다윗의 위대함을 이것으로 국한치 않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임금이지만
다윗의 위대함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는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다윗은 정치도 잘하고 하느님도 사랑하고 기도도 잘한 임금,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정치를 한 임금,
정치를 잘하여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한 임금이었습니다.
다윗이 모든 일을 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는 것은
일을 성사적으로 하였다는 얘기가 되지요,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저는 제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일을 안 하고 빈둥빈둥 거리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도만 많이 하는 사람도 삶을 결코 잘 산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일 중독자처럼 일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도 참 불쌍하고,
중독자까지는 아니지만 의미 없는 노동을 하는 사람도 불쌍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일하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일 때문에 사람을 잃거나 그렇게 많은 일을 하였지만
일밖에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고 아무도 없는 일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수학문제하고만 씨름하는 고독한 수학자처럼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없고, 사랑이 발생치 않는 그런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그런 인격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이 성사적인 일이지요.
<성자가 된 청소부>나 <성자가 된 똥 지게꾼>처럼
자기 안에 깨달음을 지니고, 하느님을 지니면 무슨 일을 하건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당당하고 그 일은 거룩하지요.
제가 옛날에 담배를 피울 때 이런 시도를 하였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성사가 되도록 담배를 피자.
담배를 피우는 것이 분향예절이 되도록 담배를 피자.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를 피울 때마다 성호경을 바치고 하느님 생각을 하면
이 담배 피우는 행위가 성사가 되지 않겠는가?
어떤 때 성사행위에 실패하여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기도 했지만
자꾸 의식화하고 습관화하니까 담배를 피울 때마다
가외로 생활 기도를 더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였다는 다윗의 얘기는 오늘로서 끝나지만
모든 일, 특히 죄 중에서도 하느님을 만났던 그의 성사적인 삶을 잊지 말고
우리도 그렇게 성사적인 일을 하고, 성사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