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바쁘냐고 물으면 전에는 바쁘다고 답하는 것이
제가 삶을 잘 못 사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바쁘지 않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서울에 올라와서 대전에 있을 때보다는 좀 바쁘다고 답합니다.
물리적으로 바쁜 것도 있지만
맡은 것이 여럿이다보니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것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제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소리를 하는지 이내 반성합니다.
치매 시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잠시도 외출 못하고 시달리는 분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며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들,
그밖에도 사람들에게 시달리지만 어떻게 벗어날 수 없는 분들,
이런 분들을 생각할 때 저는 제가 선택해서 일을 하고,
벗어나고자만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으니 사치스런 소리지요.
그러니까 자기 탓이 아닌 상황 때문에 도저히 떠나 쉴 수 없는 분들에겐
오늘 말씀이 ‘너 얼마나 힘드니! 가서 좀 쉬라.’고 숨통을 터 주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대신 치매 시어머니를 돌봐주시고,
진상 고객들을 상대해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실제로 오늘 주님께서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당신 혼자 감당할 테니
선교여행을 갔다 와 너무도 지친 너희는 가서 쉬라고 하시잖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실제로 대신 쉬게 하실 수 있고, 쉬게 하십니까?
그것은 굶주린 군중을 먹일 때 ‘너희가 주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이 되어 쉬게 해주라는 말씀이지요.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우리 주변에
도저히 떠날 수 없어 쉬지 못하는 분들이 쉴 수 있도록 주님 대신
‘오늘만이라도 한적한 곳에 가서 쉬고 오세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에게 가서 쉬라는 주님의 말씀은
너는 제발 가서 좀 쉬라는 명령입니다.
쉴 수 있는데 쉬지 않거나 쉴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명령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쉴 줄 모릅니까?
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의외로 쉴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굴렁쇠가 구르는 것을 멈추면 쓰러지는 것처럼
일을 쉬면 존재가 흔들리는 사람은 쉬는 것이 어렵고
사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쉬는 것이 어렵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렇게 사람에게 시달리면서도
사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고립을 살면서도 고독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잘 살면 고립을 살지 않을 텐데
사람에게 애착하기에 고독을 살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기에 고립을 사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가라 하십니다.
고독을 한 번 살아보라고 하시고
고독을 한 번 살아내라고 하십니다.
고독 가운데에서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라고 하시고
하느님과 대면하고 사람들과도 진실하게 대면하라시는 겁니다.
고독만이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면치도 못하는 우리를
진실하게 대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어쩌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올 분들은
오늘 주님 말씀처럼 ‘외딴 곳으로’ 가서 쉬셔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