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솔직히 말해 수도원에서는 명절이라고 해도
그렇게 명절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수도원이 저희 집이니 가야 할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식구가 저희들이니 어디 가지 않고 저희끼리 명절을 지내는데
늘 같이 사는 사람끼리 있으니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명절이란 사랑하는 가족이 떨어져 있고 그래서 보고 싶은데
다른 때 만나지 못하다가 명절이 되어서야 다 만나게 되었을 때
그것이 명절이고, 명절의 기분이 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명절이 명절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명절이어도 물리적인 명절날일 뿐
전혀 명절이 아니고 명절이 되어도 전혀 기쁘고 즐겁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외롭고, 서럽고, 괴로울 뿐입니다.
독거노인이 그렇고, 이산가족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새해 새날을 맞이하여 복을 빌어주는데
그 복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느 핸가 ‘새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이었고
새해 건강하시라는 인사는 꽤 일반적인 인사가 됐지만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 되려면 건강 복, 재물 복보다도
인복, 곧 사람 복이 우리가 바라는 복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복이란 다름 아닌 사랑할 사람이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인복이 많다고 자신합니다.
아니 최면처럼 내게 그리 말합니다.
나는 인복이 많아!
아무렴 저와 같이 사는 사람이 복이 아니라 애물단지였으면 좋겠습니까?
또 복을 내게 가져다주는 복덩이가 아니라
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바로 여기서 갈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인복이 많아서 내 주변에 복덩이가 많다고 생각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와 같이 사는 사람이 다 애물단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라면 나는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내게 사랑할 사람, 사랑해줘야 할 사람 많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인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 또는 내가 복이 많아서 인복이 많다고 생각지 않고
천복天福이 많아서 인복人福도 많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천복이란 인간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복들이라고 믿는 거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재물 복, 건강 복 등 모든 복을 주셨음에도
사랑할 사람을 아무도 주지 않으시고,
사랑할 수 있도록 내게 사랑을 주지 않으셨다면
그래서 사랑을 정말 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다면
그 다른 복들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되 천복을 받으시길 바라고,
하느님께서 사랑하도록 내게 주신 복들을 복으로 잘 받아들이시길 빕니다.
이것이 제가 새해에 여러분에게 드리는 축복이며 새해 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