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라.”(요엘 2,12-13)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 6,18)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아니 사순시기를 생각만 해도 반기는 마음이 아니라 부담스러우면서
‘또 이 시기가 왔구나!’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생각을 해보면 사순시기 하면
단식이니 절제, 고행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인데
이런 것들이 제 뇌리, 아니 골수에까지 박혀 있나봅니다.
그래서 저를 반성하며 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순시기를 이렇게 보내는 것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실까?
부담스럽게 억지로 하는 단식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실까?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따지기 전에
사순시기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을지,
어떻게 보내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할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순시기를 억지로라도 괴롭게 보내는 것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뭣이든 기꺼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것에 이런 뜻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아직 죄 중에 있음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음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주님의 고통을 생각할 때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어제는 제가 마라톤 연습을 하였는데
제가 시간만 나면 마라톤을 죽어라 하고 뛰는 것을 보고
마라톤 중독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꼭 좋아서 뛰고 즐거워서 뛰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처럼 뛰기 싫을 때가 더 많고 뛰는 것이 괴롭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제 스스로 마라톤을 뛰는 것이고
명절인데도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마라톤을 뛴 것입니다.
제게 목표가 있고, 하여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 뛴 것인데
이것이 바로 좋아서 뛰는 것과 다른 기꺼이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사순시기는 어디에 목표를 둘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금연, 금주, 단식 등을 하던 다른 해와 달리
<Coram Deo>가 마음에 떠올랐고 차올랐습니다.
<Coram Deo>란 <하느님 앞에서>란 뜻인데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제 왜 이런 생각이 떠올랐냐 하면 어제 아침 성무일도를 할 때
“너희가 진심으로 하느님께 돌아와 마음을 다하여
참되게 살면”(토빗13,6)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제가 있으려면
먼저 진심으로 하느님께 돌아와야 하고,
하느님 앞에 있게 되면 제가 무엇을 하건
가식으로 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올 사순시기의 실천은 <Coram Deo>로 정했습니다.
단식을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단식을 안 하고 먹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기도를 안 하고 놀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자선을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자선을 안 하고 쓰더라도 하느님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