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축일이 아니고
오늘 축일 이름대로 성 베드로 사도좌의 축일입니다.
그리고 사도좌 축일인데 다른 사도가 아닌 베드로 사도의 좌,
곧 로마 교구의 사도좌 또는 로마 교구장의 자리 축일입니다.
로마 교구장의 <자리 축일>이라고 제가 이름을 바꿔 불렀는데
이렇게 부르니까 그 느낌이 어떻습니까?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식으로 하면 임금님의 자리 축일 또는 용상축일인데
우리가 용상축일을 지낸다면 많이 이상하겠지요.
착좌식이라는 것도 있는데 용상축일을 지낸다면
그것은 착좌 기념일 또는 취임 기념일 같겠지요?
오늘 축일이 그런 취임 기념일일까요?
제 생각에 이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그런 기념일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세속의 자리와 비교하여 베드로 사도좌의 의미,
로마 교구뿐 아니라 모든 교구의 교구장좌의 의미를 새기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모든 자리의 의미를 새기는 날입니다.
우리말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럴만한 사람이기에 그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실제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린 나이에 관구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능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절대 관구장직을 수행할 수 없는 저였지만
관구장이 되니 자리가 그 직책을 수행케 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없는 매우 인간적인 생각이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이유도 이렇게 인간적인 의미로
자리를 차지하거나 직책을 수행치 말라는 뜻입니다.
신앙적인 자리라면 그럼 어떤 것이고,
신앙적으로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자리란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 책임자의 자리일 뿐 아니라
공동체도 여느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공동체란 주님이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당신이 당신 교회를 세우신다고 분명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당신이 세운 당신 교회이고 당신이 일꾼을 임명하시는 것이며
당신이 그 일꾼을 통해 당신 교회를 다스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공동체인양 생각하거나 자기가 잘나서 일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러기에 자기 마음대로 공동체를 주무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인들조차도 이런 잘못을 범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총 봉사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세운 수도회가 초기 이상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큰 실의와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기도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수도회를 누가 세웠느냐?
주님, 당신이십니다.
그런데 왜 네가 걱정을 하느냐?
그런데 성인인 프란치스코도 이러하다고
이것을 우리가 당연함의 핑계나 이유로 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성인도 이러한데 우린 얼마나 더 공동체와 자리를 사유화할지
자신을 더 반성하고 조심하라는 예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좌를 잇는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함도 잊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