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어제에 이어 자리에 대한 묵상을 이어갈까 합니다.
오늘도 모세의 자리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자리와 모세의 자리는 과연 어떤 자리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모세의 자리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리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그들의 행실은 그들이 자리에서 얘기한 대로 하지 않으니
자리에서 한 말만 따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자리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진정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하고 실천치 않아도 되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그럴 경우 그들의 말을 사람들이 과연 따르겠습니까?
결코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런 말은 사람들이 따르지도 않지요.
한 해를 보내고 올 초 저희 종신 서원자 공동체는 생활반성을 했습니다.
여러 반성 중에 양성과 관련한 반성도 하였는데 그 골자는 이러합니다.
양성을 직간접으로 담당하고 있는 종신 서원자 형제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성기 형제들을 모두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그리고 노파심 때문에 형제들에게 많은 말을 하지만
실천적 모범이 약하기 때문에 많은 말이 오히려 역효과였다는 거였고,
그래서 말로 많이 가르치기보다 솔선수범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공동체 미사를 주례한 형제가 강론을 하면서
수도자의 실천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뜻에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레닌이
수 십 만의 정교회 성직자 수도자들을 처형하였는데
성직자들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고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빵을 빼앗아 자기들 배만 불리고
사람들은 굶주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면서 처형을 했다고 합니다.
약장사가 약을 팔면서 정작 자기는 먹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사람들은 아무도 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먹어 실증적으로 효능을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지요.
그러므로 모세의 자리에 앉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자기가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왜 실천치 않을까요?
좋은 약인 줄 안다면 남에게 권하기에 앞서 자기가 먼저 먹듯
하느님의 말씀이 진정 행복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믿는다면
자기가 먼저 실천할 터인데 왜 실천치 않을까요?
그러므로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모세의 자리에 앉았을 뿐
하느님의 말씀이 진정 행복의 말씀, 복음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 않고 듣는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우리의 실천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합니다.
모세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지 않는다 해도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면 우리는 실천을 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 말이 맞는 말일뿐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라면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더더욱 실천해야 하지요,
어두운 밤에 길을 가는데 등불을 강도가 준다고 하여
그 등불을 마다해서는 아니 되겠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누가 전해주건 하느님의 말씀이니
하느님 때문에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 때문에 실천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실천하는 성사적인 실천자가 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