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라고 질문한 사람들이
오늘은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라고
아주 나쁜 사람, 신성모독자로 주님을 몰아세웁니다.
자처란 무엇입니까?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행동함’
영어로는 ① pretension ② assumption ③ look upon oneself
그런데 영어에서 pretension은 “-인척 함” 또는 “-인체 함”으로
그리 좋은 뜻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말에서도 그리 좋은 어감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들은 신이 아니면서 신인 척 한다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말을 한자어 그대로 풀이를 하면 그리 나쁜 뜻이 아닙니다.
자처自處란 스스로 자기를 어디에 두는 것이지요.
이것을 좋게 이해하면 자기정체성, 자기정체감입니다.
우리는 정체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하고,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회원들이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불분명하다며 걱정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면 안 되지요.
많은 그리스도인 국회의원 또는 정치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저렇게 정치를 하냐
어떻게 저런 말을 하냐 하고 개탄을 하곤 합니다.
저는 장면 박사 사업회 이사가 된 이후 틈틈이 그분의 생애를 읽고 있는데
그분은 긴 기간 외교관과 정치가로 살았지만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무엇보다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으로 사신 분이라는 것을 점점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남 얘기나 남 탓은 그만 하고,
나는 나를 누구라고 자처하는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한 번 얘기해봅시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히 놀랄만한, 아니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았다면
우리도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선언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래서 나는 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신이라고 자처합니까?
그렇게 감히 자처하는 것이 너무 무도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정체성은 확고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자처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자처하면서 하느님 욕 먹이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까?
욕 먹일까봐 두려워 감히 자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까?
말로는 자처하지 못하나 행동으로는 하느님의 자녀임은 드러냅니까?
예를 들어 어디서나 십자 성호와 함께 성호경은 당당하게 바칩니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우리 교리는 가르칩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성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고,
짐승만도 못하게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가 당신과 똑같이 신성을 살라고 본보기가 되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고 닮아가는 것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심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 못지않은 사랑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