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1차 전도여행의 요약이며 마무리입니다.
오늘의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낌이 남습니다.
엄청난 선교여정을 어쩌면 이렇게 간단히 기술을 할까!
반대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집요하게 반대를 할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어쩌면 이렇게 담대할까!
진정 반대자들의 반대는 집요합니다.
자기 지역에서 선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곳까지 쫓아가 사람들을 선동해 바오로에게 돌팔매질하게 하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초주검이 되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오늘 사도행전의 기술이 너무도 간단하고
바오로 사도의 태도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합니다.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이나 바오로 사도에겐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인지
‘이것이 뭐 그리 특별한 것이냐?’ 뭐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태연泰然함에 잠시 생각을 머물러봅니다.
태연泰然의 태泰는 사전적으로
‘①크다 ②넉넉하다 ③편안하다 ④너그럽다 ⑤통하다’의 뜻이고,
연然은 ‘①그러하다 ②그렇다고 여기다 ③동의(同意)하다’의 뜻입니다.
이렇게 태연의 함의, 그러니까 태연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뜻을 보니
바다가 연상이 되고, 자연히 찻잔 속의 태풍도 연상이 됩니다.
바다는 태풍이 불어도 넘치는 법이 없고,
겉은 사나워도 바다 속 깊은 곳은 요동이 없지요.
그에 비해 찻잔엔 조그만 돌 하나 떨어져도 온통 뒤집힙니다.
사람도 그릇이 크면 넉넉하고, 편안하고, 너그러우며
남의 말이나 심한 공격에도 그렇다고 동의하거나 그러려니 하겠지요.
그에 비해 그릇이 작은 사람은 말 한 마디에도 팔팔 뛰겠지요.
당연하지요.
말 한 마디에 전 존재가 흔들리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떤 환난에도
바오로 사도처럼 태연하기 위해서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큰 그릇이고, 어떻게 하면 큰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큰 사람이란 우선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고,
원대遠大한 꿈이란 멀리 내다보는 큰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지금 겪고 있는 큰 어려움도 까짓것 하며
태연하게 넘길 수 있는데 큰 꿈을 위해 어떤 환난도 각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에게 원대한 꿈이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오늘 제자들을 떠나 하늘에 오르기 전 환난을 예고하시며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고 하시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도 오늘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태연이란 평화의 다른 이름이고, 환난을 각오하는 평화라고.
오늘 저는 이밖에도 큰 것에 가치를 두는 큰 사람,
큰 사랑을 지닌 큰 사람에 대해서도 얘기해야겠지요.
하느님 나라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은 이 세상 고통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큰 사랑을 지닌 사람도 고통을 두려움 없이 또 기꺼이 받아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환난 중에도 태연한,
환난 중에도 평화로운 오늘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