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에게 질문을 하면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고,
저희 초기 양성기의 형제들 중에도 잘못 알고 있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동냥을 해서, 곧 애긍으로 먹고 살았다고 답을 하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냥이 제일 첫 번째 생계수단은 아니었지요.
초기 프란치스칸들은 오늘 바오로처럼 각기 일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유언에서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 손으로 일을 하였고, 또 지금도 일하기를 원하며
다른 형제들도 올바른 허드렛일에 종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일의 보수를 받지 못할 때에 동냥하면서 주님 식탁으로 달려갑시다.”
그러니까 초기 형제들은 일을 했는데도 아무런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때 동냥을 해서 그것으로 먹을 것을 해결했다는 얘기이며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프란치스칸의 기본이기에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일을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전. 후서에서 모두 비슷한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1테살2,9)
그러니까 바오로 사도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일이 싫어 빈둥거리며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 두 번째 이유(2테살3,10-12 참조)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여기서는 얘기하지 않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자기의 복음 선포가 게으른 사람의 생계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 자기 복음 선포가 더 강력한 힘을 지니기 위해서 일을 한 겁니다.
요즘 아주 걱정스런 모습 가운데 하나가 사제나 수도생활을 소명이 아니라
생계수단 또는 직업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제나 수도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 계속 이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되겠지만
이것은 그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우리 교회에도 크나큰 손실이며
무엇보다도 교회의 복음 선포가 정당성과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일부 잘못된 목사들이 교회를 사고팔고,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세습한다는
사회의 지탄이 있고 우리 중에도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게거품 물며 이에 대해 비판하는데 사돈 남 말 하듯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할 때보다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 곧 생계를 위한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자기의 일이 하느님의 일로 둔갑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지요.
반대로 자기의 일을 할 때 하느님 일을 더 떳떳하게 그리고 잘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제나 수도자보다 더 훌륭한 평신도 복음 선포자들이 많습니다.
오래 전 판공성사를 주고 늦게 돌아올 때 대중교통이 끊겨서 택시를 탔는데
분위기가 다른 택시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음악이 잔잔하면서 클래식 음악이 나왔고,
다른 택시처럼 거칠게 운전하거나 쌍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니 제게 하느님에 대해서 애기하고 천주교를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수도원에 거의 다 와서 제가 사제복을 안 입어서 죄송하다고 얘기하고,
사실은 수도 사제인데 수도원에 들어와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시라 했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쉬는 날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한 주일에 한 번은 성경공부를 하는 분으로서 생계를 위해서도 일을 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기에
운전하는 일도 하고 기사사도회도 하신다는 거였습니다.
그분의 삶은 제게 큰 감동이면서 동시에 부끄럽게 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프란치스칸 초기 이상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 복음을 전하는
순회 선교 공동체를 25년 전에 시작하게 한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그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니
더 큰 부끄러움을 가지고 저를 반성을 하며 다짐도 하는 오늘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씀(2테살3,10)도 마음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