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이 이야기의 속사정을 한번 추론해 보자.
베드로는 제자 공동체의 맏형이었다.
능력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나이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형 노릇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신앙고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맏이가 형노릇 하는게 순리이기 때문에
제자 공동체의 책임자 역할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베드로는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잘 될 리가 없다.
자기보다 더 똑똑한 동생들도 많았고
기질상으로도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도 많았다.
능력으로도,
리더쉽으로도,
베드로는 인정받을 만한 형이 못되었다.
그래서 동생들도부터
빈정대는 소리도 많이 들어야 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때마다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참아주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베드로는 그때마다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 위안하면서도
뿔다구가 날 수 밖에 없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녀석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동생 중 한녀석이
또 형을 싹 무시하지 않는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수록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실컷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견디다 못해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가를 얻어
한대 쥐어박을 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예수님, 이 정도 참았으면 되었지요?
이제 한 대 쥐어박아도 되겠지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도 인정해 주시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건 누가 봐도 해도해도 너무한 일이라
<그래 한 대 때려 주려무나> 하실 거라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허허> 하고 혀를 차면서
지금까지 용서했다면 끝까지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렇지 않냐 베드로야!
쥐어 박을 것이었다면
첨부터 강하게 쥐어박을 것이지
이제와서 더 참지 못하고 쥐어박으면
지금까지 참은 것이 허사가 아니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참지 말아라.
쥐어 박아야 겠다면 그 자리에서 쥐어 박아라.
하지만
용서하고 참았다면
끝까지 용서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아예 용서하지 말아란 말이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맏이 역할을 해야만 하는 이들은
베드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말씀하시리라.
<한번 참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참아라.
끝까지 용서해라.
그것이 안될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쥐어 박아라. 속 시원하게...>
그래 이렇게 살자!
단순하게 살자!
이것저것 너무 따지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울고불고 원통해 하지 말자.
용서할려면 끝까지 용서하고
그게 안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강하게 따지고 욕을 하고
한 대 멋지게 갈겨 주라.
그러면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 고통은 겪지 않으리라!
베드로야, 베드로야!
그대는 혹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대상이 있는가?
지금까지 참아왔다면 용서하라.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 말라.
처음부터 안될 성 싶으면 아예 대판 싸워라.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버려라.
입으로 깨물어 버리든지
몽둥이로 속시원하게 두들겨 패버려라.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평생 원한과 미움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이 이야기의 속사정을 한번 추론해 보자.
베드로는 제자 공동체의 맏형이었다.
능력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나이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형 노릇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신앙고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맏이가 형노릇 하는게 순리이기 때문에
제자 공동체의 책임자 역할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베드로는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잘 될 리가 없다.
자기보다 더 똑똑한 동생들도 많았고
기질상으로도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도 많았다.
능력으로도,
리더쉽으로도,
베드로는 인정받을 만한 형이 못되었다.
그래서 동생들도부터
빈정대는 소리도 많이 들어야 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때마다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참아주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베드로는 그때마다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 위안하면서도
뿔다구가 날 수 밖에 없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녀석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동생 중 한녀석이
또 형을 싹 무시하지 않는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수록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실컷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견디다 못해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가를 얻어
한대 쥐어박을 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예수님, 이 정도 참았으면 되었지요?
이제 한 대 쥐어박아도 되겠지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도 인정해 주시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건 누가 봐도 해도해도 너무한 일이라
<그래 한 대 때려 주려무나> 하실 거라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허허> 하고 혀를 차면서
지금까지 용서했다면 끝까지 용서하라고 하신다.
<그렇지 않냐 베드로야!
쥐어 박을 것이었다면
첨부터 강하게 쥐어박을 것이지
이제와서 더 참지 못하고 쥐어박으면
지금까지 참은 것이 허사가 아니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참지 말아라.
쥐어 박아야 겠다면 그 자리에서 쥐어 박아라.
하지만
용서하고 참았다면
끝까지 용서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아예 용서하지 말아란 말이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맏이 역할을 해야만 하는 이들은
베드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말씀하시리라.
<한번 참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참아라.
끝까지 용서해라.
그것이 안될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쥐어 박아라. 속 시원하게...>
그래 이렇게 살자!
단순하게 살자!
이것저것 너무 따지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울고불고 원통해 하지 말자.
용서할려면 끝까지 용서하고
그게 안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강하게 따지고 욕을 하고
한 대 멋지게 갈겨 주라.
그러면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 고통은 겪지 않으리라!
베드로야, 베드로야!
그대는 혹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대상이 있는가?
지금까지 참아왔다면 용서하라.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 말라.
처음부터 안될 성 싶으면 아예 대판 싸워라.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버려라.
입으로 깨물어 버리든지
몽둥이로 속시원하게 두들겨 패버려라.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평생 원한과 미움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근데 힘이 모자라서 내가 몸살 나겠어요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