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오늘 베드로서의 첫 말씀은 <갓난아이처럼>입니다.
갓난아이처럼 젖을 갈망하고,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번역은 <갓난아이처럼>이지만
<새롭게 태어난 젖먹이처럼>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입니다.
뒤의 10절을 보면 전과는 달라진 새로움에 대해서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갓난아이란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워난 사람,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사람으로 새로 태워난 영적 젖먹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갓난아이를
이 세상의 온갖 때(죄)로 절을 대로 절은 늙은이에서
영적인 젖먹이로 새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요즘 제가 저에게서 희망을 보고 후하게 점수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죄가 쌓이고,
죄에 대한 죄책감도 무디어졌고
죄가 습관習慣처럼 습習이 되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새롭게 태어나고픈 갈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침 미사가 거의 매일 참으로 은혜로운데
주님께서 미사를 통해 매일 새로운 은총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은총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저의 죄를 발견하는 은총이요
하나도 고치지 못하면서도 뉘우치는 마음이고
그런 만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픈 갈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라는 말씀이
오늘의 첫 말씀으로 들렸을 때 요즘말로 이 말씀에 “필(Feel)”이 꽂혔고,
‘그래 나는 정말 영적인 젖먹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는 영적인 젖먹이.
나이를 먹을수록 이 세상에서는 내가 여러모로 추루해지지만
그래 영적으로는 젖먹이가 되자!
젖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젖먹이이고,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젖먹이인데
나는 영적으로 젖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젖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환시를 보았다는데
인간의 젖도 영적으로라면 그렇게 맛있는데
하느님의 젖은 얼마나 더 맛있을까요?
시편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으라 하시는데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매일 새롭게 맛보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