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이 말은 김 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자주 쓰던 말인데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이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인간으로서
더 할 수 없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생각되어
그때부터 저도 제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해온 말입니다.
경천애인은 꼭 신앙인이 아니어도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이걸 신앙인이 쓰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 될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그 내용과 표현이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얘기했지만 존경尊敬은 최고의 사랑이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최고의 존경을 드리는 것이어야 하며
최고의 존경은 두려움과 사랑이 함께 있는 경외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경외敬畏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잖아요?
지혜서를 보면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지혜의 시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두려워함은 깡패나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과 다른
너무 큰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으로서
하느님을 초월적으로 만나게 되면 누구나 이런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함은
하느님께 대한 이런 경외심이 없기 때문인데
이것은 비단 오늘날뿐 아니고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을 높이 칭찬하며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하셨지요.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감히 자기 집에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말씀 한 마디면 뭐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자기나 자기 종도 말씀 한 마디에 생사가 좌우될 거라고 믿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런 사랑이 맨 밑에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이런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너무도 황송스러운 것이 되어 감지덕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에 접한 사람만이 이웃을 진정 사랑할 겁니다.
높으신 하느님께서 벌레 같은 나를 사랑하셨으니
자기도 이웃에게로 내려가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거지요.
백인대장은 종이라고 하여 함부로 부려먹어도 된다고 생각지 않고,
종의 아픔을 너무도 같이 아파하고 종을 위해 발품을 팔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종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자신이나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자기기도 안에 이웃을 포함시키는 것,
다시 말해서 하느님 사랑 안에 이웃을 맡기는 것,
이것이 최고의 이웃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백인대장을 보면
위로는 하느님을 경외로이 사랑하고
밑으로는 이웃을 겸손하게 사랑하는
경천애인을 오늘도 마음에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