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는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의견과 맞이 않아 충돌했을 경우,
다음 번에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행동하지만,
그 선택이 매번 그들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들 입장을 배려해 준다는 마음으로
내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의견을 따르지만,
오히려 불만이나 짜증을 듣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렇게 해도 불만,
저렇게 해도 불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두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적용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선택하다보면
다른 살마들의 마음과 부딛치게 되고,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 둘 나를 등지게 됩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내가 편하게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것은 고통으로,
힘듦으로,
외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모습이 원래 그러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각자가 원하는 것만 가지고 대화를 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발끈해서 화를 내게 됩니다.
관계가 어긋나고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 그 불편함은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선택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원인을 찾기보다는,
내가 지금 주님의 뜻을 찾고 있는지,
내가 찾은 주님의 뜻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인간적인 아쉬움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아버지 장례를 신경쓰지 않을 수 있나?
떠나면서 말 한 마디 없이 냉정할 수 있나?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우리는 다 맞출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입맛은 놓치고 지나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그 누군가에게서는 또 다시
불만이나 짜증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선택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뜻을 따라갈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할지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양쪽 다 어려움이 따라온다면
저는 주님의 뜻을 선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