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제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이 있어 오늘은 그 문제를 묵상할까 합니다.
30년 전 제가 본당사목을 잠깐 할 때 악령에 들린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악령에 들린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상한 분일 수도 있습니다.
평일 저녁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미사 중에 뭔가 강한 시선이 느껴져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분이 2층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였습니다.
평일 미사 때는 미사 참석자가 많지 않기에 2층은 쓰지 않는데
불도 키지 않은 그곳에서 혼자 미사 드리며 저를 내려다보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악령이 들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악령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신경전을 벌이며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분이 악령이 들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가 악령 들린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악령 들린 사람이 어찌 미사에 참석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복음을 읽으며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왜 예수님이 계신 회당에 왔을까 생각게 됩니다.
우연히 왔다가 마주친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찾아온 것일까?
일부러 찾아왔다면 왜 찾아왔을까?
무슨 상관이 있냐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 왜 찾아왔을까?
그러니까 자기는 원치 않는데 예수님께서 찾아온 것이거나
자기가 일부러 찾아왔다면 이런 것일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렇고 다른 데서도 나오는 것이 더러운 영입니다.
이 더러운 영이 사탄 또는 악령과 다른 존재라면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도전하는 악령과 달리
더러운 영은 하느님께서 자기와 아무 상관만 없으면,
다시 말해서 자기를 가만 놔두기만 하면 되는 영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영은 하느님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기 영역을 갖고자 하고,
그래서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누가 들어오려고 하면 방어하는데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들어오시려고 하면 방어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기 구역으로 들어오셨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왜 여기에 오셨냐고, 자기를 멸망시키러 오신 거냐고 따지듯 묻는 겁니다.
오신 것이 자기와 상관없이 오신 거라면
다시 말해서 자기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오신 거라면
무슨 좋은 일을 하시든 자기도 상관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있겠지만
자기를 부마자에게서 쫓아내기 위해서 오신 거라면
당신이 누구신지 아니 자기 영역에서 떠나 달라고 말하러 온 것일 겁니다.
더러운 영은 정말 더럽게 비열하고
더럽게 자기 숙주인 부마자에게 집착하는 존재입니다.
비열하다 함은 마음이나 정신면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포로로 삼아 자기 집을 마련하기 때문이고
집착한다 함은 다른 많은 사람 놔두고 그 한 사람에게 매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이나 더러운 영의 소유자란 결국 만만한 어떤 사람 외에는
다른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고 하는 존재,
하느님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는 존재이겠습니다.
사실 우리도 아무하고 관계, 상관이 없다면 좋을 것입니다.
사랑 안 해도 되고 더욱이 미워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고픈 사람이라면 이래서는 안 되고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거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누구도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