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오늘 주님께서는 자기 눈의 들보를 빼지 않고
남의 눈의 티를 빼려는 사람을 위선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람이 위선자가 아니라
바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를 보는 것을
위선자의 관점이 아니라 바보, 어리석음의 관점에서 보고 싶습니다.
모 신문에서 이승욱이라는 분이 <날 좀 바라봐!>라는 글을 기고하였는데
이 분의 얘기는 이런 현상들을 가지고 얘기를 시작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안경을 끼고 있으면서 안경을 찾고,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 휴대전화를 찾습니다.
이런 현상을 사람들은 보통 정신이 없어서 그런다고 얘기하는데
이분은 안경과 휴대전화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보면서
엄연히 있는 것(존재)들을 <비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엄연한 인간 존재도 <비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세태를 꼬집습니다.
어제, 그제 저는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광화문에 가서 같이 단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제는 제 17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고,
이 기념식에 사회복지부 장관이 오기에 중증 장애인들이 그를 만나겠다고
시위를 하고 있었고, 경찰들은 이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중증 장애인들이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인간답게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 수당을 올려달라는 거였는데
내년 전체 예산이 3, 7% 오르고 시설복지를 위한 예산도 크게 오르지만
장애인 자립센터 예산을 오히려 5% 깎이고 수당도 200원밖에 안 올라서
자기들의 주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직접 하소연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분들의 진짜 주장은 예산을 더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도 엄연히 있다는 것, 그러니 자기들을 좀 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눈길로 찾아주고! 보듬는 손길로 안아주고!"가
이번 기념식의 슬로건이었는데 왜 자기들은 만나주지도 않고
자기들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느냐고 그들은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장관뿐 아니라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회복지 시설장들과
광화문을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이들을 바라보지도 얘기를 듣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고,
중증 장애인들은 위험하게 휠체어를 타고 길로 뛰어드는 것이지요.
다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그런다고 다들 변명을 하지만
그런데 오늘 주님 지적처럼 다른 사람의 티는 잘도 봅니다.
봐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는 거지요.
우리 사회가 남의 아픔을 보지 않을 때
내게 그런 일이 닥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는 나를 외면하겠지요.
이것이 우리 자기중심성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어리석음입니다.
봐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두 번째 어리석음은
봐야 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를 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눈에 조그만 티만 들어가도 우리는 얼마나 괴롭습니까?
육신의 눈은 이렇게 조그만 티도 알아채고 그것을 빼내는데
윤리적이고 영적인 티(죄와 허물)는 대들보만큼 커도
불편하지도 괴롭지도 않고 그래서 빼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정신분석가 이승우씨의 <날 좀 바라봐!>를
하나는 우리가 보려 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보려 하지 않는 나의 내면의 관점에서 보자고
여러분에게 그러나 누구보다도 먼저 저 자신에게 호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