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낙심하지 말고”와 “끊임없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낙심치는 말아야겠지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나요?
악한 우리 인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더 좋은지도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청하기도 전에 그것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선의와 사랑을 믿는다면 청치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어련히 알아서 주실 텐데 청하는 것은
그 하느님의 선의와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이 될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깊은 믿음에서 청하는 기도는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낙심 말고 끊임없이 청하라는 것은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청하기도 전에 우리게 필요하고 좋은 것을 주실 수 있지만
그래도 청하라고 하심은 청치 않아도 주시면 은총이 발생치 않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돌을 앞둔 아이 엄마와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고 있는데 주전부리를 좀 해서 그런지 밖이라서 그런지
이유식을 평소의 반 밖에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지 먹이려던 엄마의 얼굴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컸지만
아이가 끝내 먹으려 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유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주려고도 하지만
아이가 먹고 싶어 하지 않으니 먹이고 싶어도 먹일 수 없는데
이처럼 하느님도 우리 인간이 자신의 결핍도 모르고 필요도 모르고,
그래서 원하지도 청하지도 않으면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없으십니다.
달리 말해 은총을 베푸실 수 없거나 주셔도 은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청원기도란 인간이 자신의 필요와 결핍을 알아챔이 그 시작이요,
은총이 필요한 자신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필요한 줄 알아도 용기와 믿음이 없으면 청하지 못하는데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용기를 내어 청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청을 들어주시기 위해
응답을 미루실 때, 그 때 낙심치 않고 청을 계속하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오늘 비유의 군주처럼
성가실 정도로 끝까지 탄원해야만 들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낙심한다는 것은 믿음을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고,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어 희망을 포기하고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믿음의 조력자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탈출기에서는 모세가 하느님의 힘으로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때 기도란 하느님의 힘을 얻는 것이고, 하느님의 힘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힘을 얻고 하느님의 힘을 동원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힘을 동원하기 위해 산 위에서 손을 쳐들고 있는데
계속 손을 쳐들고 있는 것이 힘들고 지쳐서 팔이 처집니다.
이때 아론과 후르가 양쪽에서 처지는 손을 받쳐줍니다.
기도가 빨리 가납되지 않아 낙심하고 기도를 그만 두려고 할 때
이처럼 같이 기도해주는 사람,
낙심치 말고 같이 기도하자고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