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오늘 비유의 끝 말씀을 접하며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묵상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란
하느님 앞에 있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의 부자가 하느님 앞에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사람들 앞에는 있는 사람일까?
제 생각에는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유산분쟁을 중재해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시며
탐욕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 탐욕을 부릴 리 없고,
사람들 앞에 있는 사람도 탐욕을 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느님 앞에도 사람들 앞에도 있지 않고
오직 자기만 있고, 자기 욕구 앞에 있어서 욕심만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오직 자기만 있어서 하느님도 다른 사람도 없고,
자기 안에는 욕심만 있어서 욕심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요즘 저 자신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고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은 탈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기밖에는 하느님도 없고 사람들도 없어서 너나 할 것 없이 외롭고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욕심 밖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늘 불만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해야 하는데
자기밖에는 없고 욕심밖에 없어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욕심만 있기에 사랑이 없으며
욕망만 있기에 열망이 없으며
욕정만 있기에 열정이 없습니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욕심만 있기에 가난이 없으며
가난이 없기에 탐욕에 족쇄가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교만하기는 이를 데 없어서
하느님 앞에서 있어야 할 덕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본래 우리가 덕을 운운할 수 없고,
성인이라 할지라도 덕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겸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느님 덕분德分에
하느님의 덕을 조금이라도 받아 지닐 수 있을 텐데
교만 때문에 하느님 앞에 있지도 않고
하느님 앞에서 있어야 할 덕들이 하나도 없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 덕분에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나임을 다시 한 번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