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오늘은 연중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주님의 말씀은 마지막 당부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당부에서 주님께서는 조심해야 할 것과
애써 노력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조심하라는 말씀을 보겠는데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시면서
마음이 물러지게 하는 것들로 방탕, 만취, 근심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마음이 물러지게 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방탕이나 만취는 아주 지당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방탕이란 기분 내키는 대로 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러니까 어떤 도덕적, 영적 자기통제가 완전히 풀어진 것이고,
그래서 본능적인 욕구들에 우리는 아무 저항 없이 이끌리게 되겠지요.
만취도 같은 맥락으로서 술을 먹기만 해도 마음이 물러지기 쉬운데
만취되는 것을 허용한 것은 그 자체로 마음이 흐트러진 표시이고
이런 흐트러진 마음에서 마음이 물러지지 않기는 아주 어려운 법이지요.
저는 훌륭한 신앙 선배들의 모범을 흉내 내곤 하는데
술을 너무도 좋아하는 분들이지만 아무리 술에 취해도
꼭 성당에 들러 짧은 성체조배를 한 뒤 집에 돌아간다는 그런 얘기지요.
이런 분들을 생각하며 술 좋아하는 저는 술을 끊으려 하기보다는
마시되 이분들처럼 마시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정신으로 술 마시는 것이 막 마시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로 인해 술을 아니 마시려는 마음은 아예 먹지 않게 되지요.
이는 마음을 흐트러지게 한 다음
흐트러진 마음을 물러지지 않게 하려는 꼴이고,
김치를 햇빛에 내놓고 물러지지 않도록 얼음을 채우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런데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방탕과 만취를 조심하라는 말씀은 이해되지만
근심도 조심하라는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마음 물러지게 하는데 뭔 상관이 있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 겁니다.
근심은 그 근심 때문에 우리가 딴 곳에 마음이나 정신을 쓰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가 방탕하거나 만취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자식이 아픈데 만취하거나 방탕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그래서 근심이 너무도 크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근심을 조심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흐트러지게 하거나 약해지게 하는 것으로서의 근심인 것입니다.
근심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관심과 욕구가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며,
우리가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 때문에 기도할 수는 있어도
근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참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근심은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는 그것 앞에 있는 것,
예를 들어 암으로 근심한다면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암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근심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허물어버리고,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대림절, 주님 앞에 서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