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제가 이슬람을 처음 공부할 때 듣고 놀란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슬람이 마리아를 공경한다는 것이었고,
창시자 마호메트가 문맹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쿠란에는 마리아에 대한 얘기가 두 번 나오는데
마리아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고 인간과 하느님/알라 사이를 중재하는 분,
약속된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된, 깨끗한 여인으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우리 가톨릭의 무염시태의 교리와 통하는 마리아 신심을
이들도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또한 마호메트에 대한 믿음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글을 전혀 모르는 마호메트이기에 쿠란은 마호메트의 창작품이 아니라
알라가 계시한 것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 전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며,
이처럼 인간의 지식이나 생각에 오염되지 않은 마호메트와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무염시태의 마리아는 같다는 얘기인 거지요.
그래서일까요? 터키의 에페소에 갔을 때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마리아가 사셨다는 집에 갔더니
놀랍게도 참으로 많은 터키 사람들이 그곳을 순례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므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말씀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그 영적인 의미가 더 풍성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인 동정성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적인 동정성, 곧 마음의 깨끗함도 아닌 영적인 동정성 말입니다.
그러면 심리적인 동정성과 영적인 동정성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진복팔단에서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되다 하셨고
프란치스코도 마음의 깨끗함을 아주 칭송할 만한 것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프란치스코는 권고에서 지상 것을 멸시하고 천상 것을 찾는 마음을
깨끗하다고 하며 이런 마음의 눈을 가질 때 하느님을 뵐 수 있으니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얘기하지요.
이는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았을 때 사물을 선명히 볼 수 있듯이
마음의 창이 세상 것으로 더렵혀지지 않고 깨끗할 때
하느님을 선명히 볼 수 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깨끗함과 동정성은 마음 수련을 통해
깨끗해진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한 동정성이고 영적인 깨끗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마리아의 임신사실에 당황하는 요셉에게 천사는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을 프란치스코는 성령의 정배가 되어 그리스도를 낳는,
영적인 동정성이라고 하고 이런 것이기에 모든 신자들에게,
특히 성녀 클라라와 자매들에게 성령의 정배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의 정배가 될 수 있고 주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지만
마음의 깨끗함만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으니
성령의 정배가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낳는 주님의 어머니가 돼야 할 겁니다.
남은 대림시기 그저 욕심을 비워 마음의 동정성을 지니는 것도 해야겠지만
우리의 영을 기도와 헌신의 영으로 바꿔 영적인 동정성을 지녀야 하겠지요.
우리가 성령의 정배가 되고 성령의 궁전이 되면 도랑치고 가재 잡듯이
마음에서 욕심을 비워내는 것은 어쩌면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