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오늘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자고 권고합니다.
예수님을 보며 꾸준히 따라가자는 말씀도 되고
예수님을 놓치지 말고 따르라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놓친다면 왜 놓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정 반대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너무도 이 세상 삶이 즐겁고 재미있어서
다른 하나는 삶이 너무도 고달픈데 예수님도 고달픈 길을 가셨기에.
먼저 이 세상 삶이 무척 즐겁고 재미있어서 주님을 보지 않는 경우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깨가 쏟아지면 서로만 보기에 남을 못 보듯
우리와 세상의 관계도 너무 좋으면 우리는 세상 것에 빠져서
주님 보기에 실패할 것입니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말기 암 환자들에 대해서 다룬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거기에 나온 분들은 모두 아직 젊은 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왜 내가?”였고, 모두 하느님께로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분노와 원망 때문에 하느님을 향하다가
차츰 치유를 청하면서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젊은 사람 대다수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느님을 보지 않았을 겁니다.
두 번째는 삶이 너무 고달프기에 주님을 보기 싫어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히브리서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는 얘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한 분들은 믿음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을 하고 이 믿음의 길을 포기하기 쉬운데
믿음의 영도자요 완성자이신 주님을 놓치지 말고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끝가지 꾸준히 가라고 격려하는 것이지요.
믿음은 반드시 시련을 통해 단련되는 것입니다.
육체단련도 힘들지 않고 단련되지 않는 법인데
믿음은 더더욱 시련 없이 단련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을 갖고 난 뒤에
자기 자신에게든 식구들에게든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그러면 그 사람은 즉시 하느님 믿어서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의 경우도 수도원에 입회하고 난 뒤에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고 특히 서원이나 서품과 같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라 하시는데도 뒤돌아보며 성소가 흔들립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믿음의 영도자요 완성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본받아야 한다고 오늘 히브리서는 얘기하는데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며
십자가를 견디시고, 적대행위를 견디셨다.”고 히브리서는 덧붙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고통과 시련만 보면
히브리서가 얘기하듯 누구나 낙심하고 지쳐버릴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주님처럼 내다본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