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당신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은근히 찝찝합니다.
우리 올해 서로 사랑하자는 말이 참으로 좋은 말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자주 이렇게 서로 같이 다짐해야 하지만
어떤 때 이 말이 우리 지금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으니
서로 사랑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런 말이 그리 흔쾌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께 돌아오라는 이 말씀이 찝찝함은 이 말씀이 비록
나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이기에 고마워야 마땅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가 당신을 지금 떠나가 있다는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진지하게 질문을 저에게 던집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주님과 함께 있는가? 그러면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 있는가? 그러면 돌아가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이것은 답하기 참 어렵습니다.
저의 굳건한 믿음은 ‘내가 하느님을 떠나 어디 가 있다는 말인가?’입니다.
아무리 내가 하느님을 떠나 있어도 부처님, 아니 하느님 손바닥에 있지요.
그러므로 당신께 돌아오라고 하심은 다른 차원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하느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나의 마음과 나의 관심과 나의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그 차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어떻다고 얘기하기 참 어렵습니다.
나의 마음과 관심과 사랑이 하느님을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나의 마음과 관심과 사랑이 온전히 하느님께 있고
오롯이 하느님께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엘 예언서가 이렇게 말하나 봅니다.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마음이 하느님께도 있고 다른 무엇에도 가 있는데
이런 갈린 마음을 하느님께만 두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꼭 그래야 되는 건지 우리는 의문이 들고
이 말의 참 뜻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의 사랑이 오롯이 자기에만 있기를 바라는
그런 독점적이고 소유적인 여인의 마음과 같은 건가요?
하느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라면 아무리 하느님이어도
그런 마음에 우리가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탕자의 비유의 아버지처럼 자유로우십니다.
떠나겠다는 아들을 붙잡지 않고 놔주시는 하느님이시며
당신과 있기 싫은데도 억지로 당신께 붙잡아 두지 않고
싫다고 떠나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하느님이시며
그렇게 자유를 주시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을 배반할 수도 있는 자유를 주심은
자유로이 떠난 것처럼 자유로이 돌아오라는 뜻이시지요.
떠날 수 있는 자유가 100%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듯
100% 자유의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라고 할 때의 그 다하는 마음, 온 마음은
마음에 아무런 강박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은 완전히 자유로운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랑 강박이 없이 완전히 자유 주시는 하느님께
아무 강박 없는 완전한 자유로 돌아가는 사랑의 사순절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