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떠난 달팽이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서다.
생존이 목표라면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성장이 목표라면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익숙한 것, 다급할 때 숨는 곳, 둥지를 떠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둥지를 떠난 달팽이는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당한다.
죽음과 생명이 오가는 것을 직접 경험하기 시작한다.
안전지대인 둥지가 그립고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다.
아버지는 스스로 찾을 때까지 바라만 보시고 알려주지 않으신다.
상상을 초월한 영원한 둥지를 발견하기까지 방황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성장의 첫 단계에서부터 죽음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은 소명 또한 아버지의 집과 생계수단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분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안정된 가정과 종교의 틀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성장을 위한 새로운 소명으로 부르셨다.
새로운 안전체제인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으로 초대한 것이다.
성프란치스코는 부유한 가정에서 살았지만 살던 곳을 떠났다.
그는 둥지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수많은 파티를 즐겼으며 더 큰 갈망에 이끌려
전쟁터로 갔다. 마침내 실패와 좌절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보게 되고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생존의 현장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들과 나환자를 만났다.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자비를 행하는 것이 그의 첫걸음이었다.
성장을 위한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성장을 위해서는 결단이 요구되었다. 그것은 떠남이었다.
세상의 아버지를 떠나 하늘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떠나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는 유언에서 모든 것이 그분이 마련하셨다고 고백한다.
떠난다는 것은 가난이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마련하신다는 믿음을 사는 이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떠남은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
세상에 살지만, 세속적 가치라고 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체제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기중심적인 체제를 떠나는 가난은 보장되지 않은 세계에서
영원히 보장되는 부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현재를 사는 것,
이제 떠남은 외형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각자의 처지에서 과정의 충실로써 선을 선택하는 일이다.
가난으로 자유롭게 된 사람은 선택으로 가난을 산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위한 가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