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후반기 설계
1. 허물 많은 나를 받아들이고 용서하기
올해는 내 나이 만 65세가 되는 해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기점으로
후반기 인생의 첫 출발의 기회로 삼아 전반기의 삶을 돌아보려 한다.
인간은 의미를 찾고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을 빅터 프랭클로부터 배웠다.
전반기의 경험 속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미래의 의미를 살아야 할 영성의 내용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다.
전반기 인생의 여러 굴곡과 상처들,
거부당하고 배척당한 부분들,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낙오한 나,
실패와 좌절과 절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나,
완전치 못하고 추락한 나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 나를 내가 용서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 때문이며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나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선을 그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나는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탓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허용하고 놓아주고 모성으로 품어주기
나이만 먹은 늙은이로 전락하고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어른 대접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존중하고 대접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명료해졌다.
자유와 관대함의 기회를 놓친 것은 과거의 흔적을 그냥 묻어두고
시간이 되면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의 단순함이 어른의 단순함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복잡함을 통과해야 한다.
지혜는 선물이지만 복잡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되며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혜를 동반하지 않는 단순함은 어리석은 바보로 끝나고 만다.
나에게서 바깥의 적들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나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라면 허용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고
그것들을 무시하고 손을 떼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들과 싸워서 이길 필요도 없고 거기에 에너지를 소모할 만한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악하고 어리석은 것들을 상대하여 싸우기보다
매일 매일 나타나는 내면의 적들을 물리치는 데 더욱 치중하는 것이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시간 기도 안에서 분별의 나날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남들과 다른 것에서 존재의 기쁨을 찾던 것이
이제는 남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더 큰 기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말 없는 말로 조용한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
많은 말로 설교하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말수가 적어졌다.
자신을 돋보이도록 증명하려 애쓰는 것보다
말없이 사랑하고 소리 내지 않고 참여하는 실천이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
나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 안에는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와 단순함이 얼굴과 눈과 입에 담겨있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챙기고 먹이려는 의지가 배어있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계셨다.
거칠고 딱딱한 손에 든 낡은 묵주는 하느님께 의존하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표상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분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은 가르침이 아니라 모범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에 열네 명의 가족들 안에서 보여준 모범은 내 신앙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분은 55세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분은 나를 낳은 어머니셨으나 어른으로 남아계신다.
후반기의 출발선에서 어른으로 남아계신 어머니를 떠 올리며
누군가를 위한 모성적 사랑으로 내 인생의 후반기를 설계해 본다.
이 시대는 어머니의 품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9, 8,31
원불교 선방에서 월피정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