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익는다.
벼들의 겸손이 들녘에 평화를 주고
귀뚜라미는 밤의 오케스트라의 솔로 주자가 되었다.
달리는 기차의 창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창이다.
출산을 앞둔 밤송이가 만삭이 된 몸으로 춤을 추고
잿빛 하늘에서 뿌리는 성수에 푸른 초원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구월이 익는다.
초가집 지붕위엔 미인 선발대회를 앞둔 흥부네 박들이 피부를 손질하고
고추가 널린 멍석 곁에서 잠자리 한마리가 싸리 빗자루 끝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
구월이 익는다.
성급한 코스모스가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깨를 터는 할머니의 막대기 가락에 맞춰 매미들이 합창을 한다.
구월이 익는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풀깍는 소리
마을 이장의 아침방송 소리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구월이 익는다.
수줍을 타다 얼굴이 빨개진 사과
황혼에 물든 복숭아
술 향기 그윽한 포도
구월이 익는다.
가을 이 익는다.
눈썹에 온 가을
머리카락에 온 가을
덩달아 나도 익는다.
2019. 9, 5.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