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
창조주께서는 창조하는 나를 창조하셨다.
진실에 닿아본 사람은 진실을 알아본다.
관계의 진실 속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은
새로운 창조의 도구로 그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부르신다.
하느님을 위한 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서 쓰시고자 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쓰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그래서 새로운 창조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꼭대기를 점령했던 내가
추락을 경험하면서 바닥에까지 가본 이후에 비로소 깨달은 진리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두 분의 스승 예수그리스도와 성프란치스코에게서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안에서 시작된 관계의 진리를 이 땅에 가져오셨고
성프란치스코는 내적 가난을 통해 그 길을 가도록 나에게 이정표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살아오면서 배우고 깨달은 경험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신다.
젊은 날에 미뤄두었거나 회피했던 것들이
다정한 친구가 되어 돌아와
내 안에서 교사가 되어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행동하던 내가 생각하는 나로
생각하는 내가 느끼는 나로
느끼는 내가 새로운 행동으로 순환하는 동안
고요하게 관상하는 안목이 생겨났다.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어 통합을 이루는 안목,
진실을 보는 이 안목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고요함은 태풍을 겪은 후에 나타난 고요함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갈등과 혼돈, 눈물과 한숨과 상처, 견딤과 기다림,
무수한 불면의 밤을 보낸 다음 찾아온 치유와 선의 확산,
그리고 사랑과 용서를 통하여 무의식 속에서 자라난 고요함이다.
관상하는 안목은
좋아하지 않는 일에 협조하는 법,
금 밖으로 배척했던 것으로부터 배우는 법
수많은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나면서 깨달은 안목이다.
그 안목은 안과 밖의 원수들을 사랑하는 법을 습득하면서 얻은 귀한 삶의 양식이 되었다.
배고픔과 갈증을 풀어주는 양식,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우물이 되었다.
모순과 대립의 극복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순과 대립의 극복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수히 잠겨있는 관계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라는 사실을 매일 매일 깨닫게 하신다.
나는 그것을 이미 극복한 것도 아니고 이룬 것도 아니며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영께서
나를 이렇게 이끌어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