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필립 2,5)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립 2,13)
세상에 살면서 세속을 떠나는 삶,
변화를 일으키는 선물은 나를 떠나는 선물이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 여러 평가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손익계산, 보상과 처벌을 통해 나를 통제하려는 올가미를 벗어나는 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찾던 그것들은 나를 꼭대기에 올려놓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가난하고 단순한 생활방식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로 나를 안내한다.
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며, 높이지 않아도 된다.
탐욕이 날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잃을 것도 없고 소유에 대한 욕망도 없으며,
갚아야 할 빚도 없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며, 더욱 거룩하고 높으며,
하느님께 더욱 중요한 사람이라고 상상한다면
그럴만한 자격이 주어진 사람처럼 자만과 독선에 빠져 폭력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러나 반응을 조작해서라도 도취의 길을 걷던 내가
욕망의 산물인 우월감을 제거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
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면
변두리에서 바닥의 인생을 사는 이들을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이나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고
변두리에 사는 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그들의 필요성을 채우며
하느님의 자비가 흘러가도록 자신을 그들 아래에 두기 시작한다.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면
자존심과 체면을 높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할 필요가 없다.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가는 자유를 찾기 때문이며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을 우리 인생의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꼭대기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가난과 겸손이 단순한 생활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머리와 가슴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영을 느낄 수 있다.
삶에 대한 목적이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데 있음을 자각하기 때문에
영혼을 위한 시간과 자비를 실천할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그 시간을 통해 주님의 영을 지니고 가까운 관계와
바깥 변두리에서 차별당하는 사람들, 무시당하는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과 연대 할 수 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은
실재적 중심은 내면에 있음을 알고
바깥에서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보호할 방어벽을 쌓는 일을 멈추고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과,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는다.”(요한1서 2,16-17)
그것들은 사라져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권과 독점과 소유
모든 형태의 독단적이고 지배적인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을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만 본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섬겨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개인적 쾌락을 위해 사람들을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통제하고 조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면 무엇에도 중독되지 않는다.
자아도취의 끝없는 형벌을 통해 얻은 지혜로 자유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가난과 겸손으로 얻은 해방의 기쁨,
하느님의 함께 계심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그렇게
하느님 나라를 현재로 옮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