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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브라질 영화 <중앙역>은 대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앙역 앞에서 편지를 대필해주는 독신녀와 엄마 잃은 소년이 함께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과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가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에 깔린 가난과 무질서, 폭력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부자나라에 입양시킨다고 속여 아이를 사고팔고, 그렇게 팔려간 아이는 장기매매의 희생양이 된다. 역의 관리인은 하찮은 물건을 훔친 좀도둑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버린다. 재판 따위는 없다.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영토, 2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가 왜 이렇게 못 살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브라질에도 부자는 많다. 그것도 엄청난 부자들이. 문제는 극심한 빈부격차다. 브라질의 식민지 역사부터 그 나라의 부를 독차지하고 있는 가문들의 이야기까지 하려면 너무 복잡하지만, 파벨라로 불리는 빈민촌 아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동안 헬기를 타고 일 년 학비가 천만 원이 넘는 사립학교를 다니는 부유층 아이들이 있다. 교통체증이 심하고 치안이 불안해서 부자들은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20여 년 전과는 달라졌겠지만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브라질은 아직도 수준 낮은 공교육, 불안한 치안, 미약한 사회 안전망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년째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현재 브라질은 미국 다음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은 나라다. 그러나 대통령 보우소나루는 코로나19를 감기나 독감쯤으로 치부하면서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반발하는 보건장관을 경질하고 바다에서 제트스키를 타며 바비큐를 즐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기자가 대통령에게 대책이 뭐냐고 묻자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하고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지도자로서 무책임과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어 미국을 창피할 정도의 후진적인 나라로 만들어버린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트럼프의 추종자인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나라를 코로나19의 수렁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우림의 파괴와 방화를 방조하고 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국민들은 코로나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 대통령 탄핵 시위를 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노조지도자였던 룰라는 1988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을 때 노동자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연거푸 세 번이나 떨어진 끝에 2002년에 어렵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의회의 다수당이자 군부독재 시절 관제 야당이었던 브라질 민주운동당과의 연정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했지만, 극빈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펼쳤다.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나라 경제가 파탄날 거라는 우려도 많았지만 브라질 경제는 호전되어갔다. 그의 복지정책 덕분에 극빈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고 중산층에 진입하는 비율도 높아져 이들이 경제를 견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룰라는 연임에 성공해 8년의 임기를 마칠 때 그의 지지율은 87퍼센트에 달했다.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지우마 호세프는 군부독재 시절 투옥과 고문을 당하던 운동가였으며 룰라 정부에서 여러 장관직을 거치며 유능함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지우마는 룰라보다 더 과감한 개혁정치를 펼쳤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거세졌다. 지우마가 반부패 법안을 발표하자 연방 검사이자 판사인 모루는 이를 기화로 정부를 수사의 타겟으로 삼았고 언론을 이용해 룰라, 지우마와 노동자당을 부패와 위선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모루는 순식간에 정의로운 검사가 되었다. 대단히 낯익은 구도가 아닌가. 마침내 지우마는 탄핵을 당했고 룰라까지 부패혐의로 투옥되었다. 그리고 군부독재 시절을 찬양하는 군인 출신 극우파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모루 검사는 법무장관이 된다. 그 후에 벌어진 상황,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50만이 넘는 코로나19 사망자, 아마존의 파괴, 나쁜 지도자를 뽑았을 때 국민이 어떤 재앙을 당하게 되는지를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현대사와 겹치는 브라질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다행히 연방대법원이 룰라의 유죄 판결을 무효로 확정했고 룰라는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브라질의 많은 국민들은 룰라가 억울하게 잡혀 들어가지 않았으면 브라질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진 않았을 거라고 억울해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도자를 잘못 뽑았을 때 어떤 재앙을 당하는지 우리는 메르스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다. 중동 이외의 국가에서는 유행한 적이 없는 메르스 유행으로 우리나라는 사망자 세계 2위의 국가가 되었고 몇 달 동안 나라가 마비되었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은 메르스 당시 감염자 1명에 사망자 0명이었다. 이 극명한 대비는 국민들을 너무 창피하게 만들었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지도자가 그때의 대통령 같은 사람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탈무드에 꼬리가 머리가 되고자 했던 뱀의 이야기가 나온다. 뱀의 꼬리가 항상 머리 가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에 불만을 품자 머리가 그에게 자기 역할을 맡겨주었다. 그러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생각할 뇌도 없는 꼬리는 도랑에 떨어지고 가시덤불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머리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꼬리가 다시 앞장서서 이번에는 불 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뜨거워지자 머리는 필사적으로 구하려 했지만 몸은 불타고 머리도 함께 죽었다. 눈도, 귀도, 뇌도 없는 지도자는 자신은 물론 몸통 전체를 파멸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다. 

  이제 곧 선거의 계절이 다가온다. 우리는 누가 머리인지, 머리인 척 하는 꼬리인지 밝은 눈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된장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http://cms.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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