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탓하지 마, 진리는 거기에 있어,
기쁨이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즙 속에 있을 때 열매라고 부르고
기쁨이 노래일 때 새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기쁨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기쁨이 없다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다.
신학적으로 맞는 말을 한다 해도
인간적인 만남이 없다면 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이며
신학이 아니라 만남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닮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피조물과의 관계 안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그분의 관심사를 나의 관심사로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나의 눈길로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나의 믿음으로
하느님의 낮추심을 나의 가난과 겸손으로
그분의 용서를 나의 용서로
그분의 허용을 나의 허용으로
그분의 견딤을 나의 견딤으로
그분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내어주는 몸과 쏟아내는 피가
한계를 지닌 나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너에게 흘러가서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기 위해 그분을 닮아가려는 것이다.
보고, 듣고, 배우는 진리가 거기에 있다.
최고의 영성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하느님이 하신 일을 발견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관계가 변한다.
그러므로 관계의 변화가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세상을 탓하지 마, 진리는 거기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