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집에 오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참 좋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협재바다도 고요히 침묵하는 듯…. 제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니 말이예요.
라디오에서는 성탄이 지났음에도 캐롤이 흘러나옵니다. 성탄의 울림이 모두에게 워낙 커서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주집에는 저녁 즈음 도착했어요.
집은 차갑디 차가웠고 냉기로 가득해서 온기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집에 생명과 생각이 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우선 보일러를 제일 높은 온도로 올리고 음악을 크게 틀었어요. 제가 집에 왔음을 집에게 그렇게 알렸지요. 저는 저와 인연이 된 제주집과도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한림. 그곳에 묵묵하게 자리잡고 있는 나무같은 내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는 제주집. 주인은 언제쯤 오려나! 언제쯤 와서 음악도 들려주고, 환하게 등도 밝혀주고, 따뜻하게 온기도 전해줄까… 하고 오래 기다렸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요.
그러나 저를 이해해 주겠지요. 무던하고 묵묵하고 소박한 제주집은 이해해 주겠지요. 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디어 냈을지 이해해 주겠지요. 또, 어느 틈엔가 집의 토닥임이 위로를 가져다 주겠지요.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괜찮아 질 것이고, 다 좋아질 것이라고요.
신부님,
이런 저의 생각이 참 철이 없지요? 소중한 인연을 오랫동안 끝날까지 지니고 지켜가고 싶은 저의 이러한 생각들은 저의 DNA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바뀌어질 수도 없고, 그냥 생긴대로 살아가야겠지요? 처음 제주집과 인연을 맺었을 때 바다는 단순한 바다 모습 그대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잔잔해지는 그런 바다였어요.
몇 해가 지난 지금의 바다, 그곳엔 풍력발전을 위한 날개가 여러개 돌아가고 있어요. 참 해도 너무하지요. 수없이 긴 세월을 자연으로 도움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여유로운 공간에 에너지 수급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이리도 피곤하고 소란스럽게 하고 있으니…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싶더라구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연은, 바다는 ‘풍력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고요와 잔잔함을 포기해야만 하니 무엇이 그릇된 것이고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그러나 이곳 제주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 허탈하더라구요. 빈곳을 빈 그대로 그냥 드래오 허락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때로 빈 바다는 무소유를 떠오르게 해주었는데 빽빽함으로 답답함을 안겨주니 참 유감스럽네요.
이번 제주에 머무는 시간동안 바닷가 도로를 다녀볼 계획을 세웠어요. 바다의 넉넉함, 고요함, 단순함을 마음에 가득 담고 가려구요. 보내는 한 해와 맞이하는 한 해를 제주에서 보내고 맞이라하려구요. 맛집을 찾는 요즘 세대와 다르게 소박한 밥과 찬에 감사하며 마음껏 가난해져 보려구요. 더불어 자유로움을 만끽해 보려구요. 늘 준비하고 계획하던 삶에서 준비없이 무계획으로 좀 나태함도 느끼면서요. 사는 것이 버거웠던 저에게 심심한 삶의 여유로움을 안겨주고 싶기도 하구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그런 머무름을 기대하면서요.
가득한 서울집 냉장고와 다르게 비워진 제주집 냉장고 – 이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후련함 또한 덤으로 즐기면서요. 늘 준비하고 채웠던 삶의 방식에서 되는대로 살아지는대로 비우는 비워진 여유로움이 주는 기쁨으로 행복해지고 싶어요.
이 시기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 제주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예쁘게 핀 꽃들을 보면서 “반갑다 꽃들아!” 하고 인사도 하구요. 작은 제주집에 예쁘게 피어난 동백꽃을 보며 “대견하다. 동백꽃아” 하고 칭찬도 하면서요.
신부님,
가는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오는 해 반갑게 맞이 하시길요.
항상 비움의 철학이 기쁨의 철학으로 거듭하시길 기도 안에서 소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