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영성
하느님과 나
내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며 사랑의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다. 성부가 성자에게 성자가 성부에게 상호 간에 내어주는 영이 성령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속성은 내어주시는 관계적 사랑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버지로 남아 있으며 아들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들로 남아 있다. 우리는 관계적 사랑의 모델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내어주는 사랑을 배운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에서 배우는 하느님의 낮추심과 내어주심,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배우는 관계적 사랑,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깨닫는 진리,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인간성은 내가 따라야 할 길이 되셨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마태11,27)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마태28,18)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요한 1,1-2)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주셨다.” (요한 3,35) “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요한 5,26)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요한 6,2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요한 6,57)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주셨다.” (요한 7,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요한 8,29)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요한 10,17-18)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요한 10,30)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주셨다.” (요한 10,36)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0,38)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요한 13,32)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요한 14,9)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24)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요한 15,9)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 (요한 16,15) “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 (요한 16,28) “ 나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다 나의 것입니다.” (요한 17,10)
너와 나
하느님의 사랑은 너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자비다. 이로써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존재다. 너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사랑에 대한 응답은 다시 너를 통해 아버지께 돌려드린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선이 너를 통하여 나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자비와 선이며, 나는 너를 통해 관계 안에 자비와 선이 흐르도록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피조물과 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성을 피조물 안에 감추어 두셨다. 우리는 피조물을 통하여 하느님을 발견한다. 나는 피조물 안에서 발견한 하느님을 통하여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은 진리이며 선이고 아름다움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오감을 통하여 피조물을 관상하며 하느님의 신비와 만난다.
나와 나
내가 나에게 나를 내어주는 선, 기도와 멈춤, 일, 휴식, 음식, 운동, 여행, 음악, 독서, 깨끗한 위생을 위한 정리, 정돈, 청소, 세탁, 등 나는 나를 하느님의 손에 들려있는 도구로 인식한다. 내가 나에게 나를 내어준 선도 하느님에게서 나온 선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객관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객관성은 주관적인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울에 비춰봄으로써 나 중심성을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관계의 현실 안에서 발견한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말씀의 통치를 통해 지금 여기서 그 나라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관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피조물과 나, 그리고 나와 나 사이에서 하느님의 신비와 만난다.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나온 선이 관계의 진실이며 우리는 이 관계를 떠나서는 자만심과 우월감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프란치스코는 형제성 안에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말씀을 잉태하고 사랑을 낳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고 성령 안에서 사랑과 일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정배가 가 되며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었다.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모자 관계, 정배 관계, 형제 관계를 맺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셨던 그리스도를 따라 성부의 아들이 되셨다.
사랑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과 맺어지는 신비적 관계는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로 확장된다. 생명 있는 존재와 생명이 없는 무생물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형제성은 하느님과 사람과 우주가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우주적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적이고 보편적인 형제성이다.
새 부대는 도구적 존재요 새 포도주는 관계 안에 행하는 선이다. 인과응보의 틀을 벗어나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삶이 여기에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도 나는 나로 남아 있게 하는 선은 그렇게 서로를 비춘다.
내어주는 사랑으로 흠뻑 젖은 두 마음, 잉태된 말씀이 태어나는 관계의 땅, 사랑은 그렇게 자유를 주는 법으로 서로를 살린다.
내 안에 간직된 말씀과 받아 모신 성체는 내어주는 사랑으로 구체화 된다. 행동하는 자비와 선은 내어주는 만큼 성전이 되고 내어주는 만큼 아름답다. 관계의 영성은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출발하여 나를 통해 너에게 전달되며 너를 통해 하느님께 돌려드린다. 이러한 내어줌의 순환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경험한다.
2025,2.2. 주님 봉한 축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