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key Rourke 주연의 성 프란치스코는,
솔직히 얘기해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주인공이 제가 가지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고
연기력도 좀 떨어지며
지난주에 본 프란치스코 영화보다
구성이나 작품성도 떨어져 감동이 적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감동을 반감시킨 가장 큰 요인은 우리말 번역입니다.
우리 영성도 잘 모르고
종교적인 감수성도 떨어진 사람의 번역인 것 같습니다.
잘못된 번역 중의 압권은 Fraternity를 친목회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안젤로 형제가 프란치스코를 찾아가니
프란치스코는 도둑이 처형되는 것을 막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안젤로가 도둑을 처형하는 것일 뿐인데
왜 막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묻자
프란치스코는 “도둑도 형제다.”라는 대답을 하고는
“Fraternity"라는 말을 혼자말로 되뇝니다.
이 영화에서 프란치스코는
Fraternity를 이루려고 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Fraternity, Franternitas!
우리말로는 친목회가 아니고
‘형제적 공동체’, 또는 ‘형제체’라고 해야겠지요.
이 영화에서 프란치스코는
형제적 공동체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형제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 차츰차츰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형제적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제일 먼저 그의 형제적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회개하기 전에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애긍을 청하러 들어왔을 때
“꺼져”라고 한 말을 즉시 후회하고 쫓아가 한 움큼의 동전을 애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Get out", “꺼져”라는 말이 이 영화에는 자주 나옵니다.
누군가를 자기 삶의 경계에서 밀어내고 몰아내고 쫓아내는 말입니다.
주로 가진 사람들이 못 가진 사람들을,
지체 높은 사람들이 미천한 사람들을,
깨끗한 사람들이 더러운 사람들을,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이 죄인들을.......
이것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미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죄지은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프란치스코도 한 때 그러 해서 거지에게 꺼지라고 하였지만
이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그리고 자신이 그런 말을 듣는 처지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나눠주는 글라라에게
“자신을 위해 주는군요.”하고 말할 정도로
자선에 대해 오해를 하던 그가 후일
시 행정 서류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는
친구의 빈정거림에 “돈 없이 사는 법을 배운다.”고 얘기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제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베푸는 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자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비와 햇빛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이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형제로 만납니다.
아버지와 재산 상속 문제로 교회의 중재를 받게 될 때
그는 “나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아버지인 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프란치스코의 형제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이제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형제, 자매가 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는 어느 가난한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 하고
병든 애기 엄마를 자기 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도둑마저도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런 새로운 형제적 공동체가
친구들 사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속속 그에게 합류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프란치스코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들 중에는 유식한 형제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들은 프란치스코의 생활양식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형제적 공동체란
이렇게 반대자들과 비판자들도 함께 있는 공동체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의 반대와 비판에 자신은
아는 것도 없고 말할 줄도 모르고 너무도 미천하여
들을 줄만 안다고 대답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가난한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반대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도 듣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형제적 공동체는
이렇게 겸손한 들음에서 이룩됩니다.
<그 밖의 의미 있는 대사들>
가족들의 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을 염려하는 프란치스코에게
글라라가 오히려 프란치스코를 안심시키며 하는 말.
받게 될 고통이란
“성령의 은사입니다.
사랑이 주는 상입니다.
내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까봐 걱정입니까?
내가 강간당하거나 죽을까봐 걱정입니까?
무의미한 안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형제들의 반대로 실의에 빠져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복음을 던져주며 글라라가 격려하며 하는 말.
“복음은 강하면서도 약한 남자 같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자.
흥분도 하고 절망도 하는 남자.
가슴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는 남자.
말하자면 당신과 같은 남자.
후퇴하지 않는 남자이다.”
오상을 받은 프란치스코로부터 무슨 얘기를 들은 것 없는지 묻는 형제들에게
아무 것도 들은 것은 없지만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며 글라라가 한 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같아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얘기해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주인공이 제가 가지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고
연기력도 좀 떨어지며
지난주에 본 프란치스코 영화보다
구성이나 작품성도 떨어져 감동이 적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감동을 반감시킨 가장 큰 요인은 우리말 번역입니다.
우리 영성도 잘 모르고
종교적인 감수성도 떨어진 사람의 번역인 것 같습니다.
잘못된 번역 중의 압권은 Fraternity를 친목회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안젤로 형제가 프란치스코를 찾아가니
프란치스코는 도둑이 처형되는 것을 막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안젤로가 도둑을 처형하는 것일 뿐인데
왜 막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묻자
프란치스코는 “도둑도 형제다.”라는 대답을 하고는
“Fraternity"라는 말을 혼자말로 되뇝니다.
이 영화에서 프란치스코는
Fraternity를 이루려고 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Fraternity, Franternitas!
우리말로는 친목회가 아니고
‘형제적 공동체’, 또는 ‘형제체’라고 해야겠지요.
이 영화에서 프란치스코는
형제적 공동체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형제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 차츰차츰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형제적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제일 먼저 그의 형제적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회개하기 전에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애긍을 청하러 들어왔을 때
“꺼져”라고 한 말을 즉시 후회하고 쫓아가 한 움큼의 동전을 애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Get out", “꺼져”라는 말이 이 영화에는 자주 나옵니다.
누군가를 자기 삶의 경계에서 밀어내고 몰아내고 쫓아내는 말입니다.
주로 가진 사람들이 못 가진 사람들을,
지체 높은 사람들이 미천한 사람들을,
깨끗한 사람들이 더러운 사람들을,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이 죄인들을.......
이것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미천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죄지은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밀어냅니다.
프란치스코도 한 때 그러 해서 거지에게 꺼지라고 하였지만
이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그리고 자신이 그런 말을 듣는 처지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나눠주는 글라라에게
“자신을 위해 주는군요.”하고 말할 정도로
자선에 대해 오해를 하던 그가 후일
시 행정 서류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는
친구의 빈정거림에 “돈 없이 사는 법을 배운다.”고 얘기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제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베푸는 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자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비와 햇빛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이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형제로 만납니다.
아버지와 재산 상속 문제로 교회의 중재를 받게 될 때
그는 “나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아버지인 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프란치스코의 형제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이제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형제, 자매가 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는 어느 가난한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 하고
병든 애기 엄마를 자기 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도둑마저도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런 새로운 형제적 공동체가
친구들 사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속속 그에게 합류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프란치스코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들 중에는 유식한 형제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들은 프란치스코의 생활양식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형제적 공동체란
이렇게 반대자들과 비판자들도 함께 있는 공동체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들의 반대와 비판에 자신은
아는 것도 없고 말할 줄도 모르고 너무도 미천하여
들을 줄만 안다고 대답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가난한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반대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도 듣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형제적 공동체는
이렇게 겸손한 들음에서 이룩됩니다.
<그 밖의 의미 있는 대사들>
가족들의 심한 반대를 받게 될 것을 염려하는 프란치스코에게
글라라가 오히려 프란치스코를 안심시키며 하는 말.
받게 될 고통이란
“성령의 은사입니다.
사랑이 주는 상입니다.
내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까봐 걱정입니까?
내가 강간당하거나 죽을까봐 걱정입니까?
무의미한 안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형제들의 반대로 실의에 빠져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복음을 던져주며 글라라가 격려하며 하는 말.
“복음은 강하면서도 약한 남자 같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자.
흥분도 하고 절망도 하는 남자.
가슴으로 십자가를 향해 가는 남자.
말하자면 당신과 같은 남자.
후퇴하지 않는 남자이다.”
오상을 받은 프란치스코로부터 무슨 얘기를 들은 것 없는지 묻는 형제들에게
아무 것도 들은 것은 없지만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며 글라라가 한 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같아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오직 선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 맡기면서 사랑한 분을 닮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그래서 오상으로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된 사부님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이나 내 caro로부터 자유스러울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글라라의 입회앞에서의 서성임
육적인 유혹앞에서의 서성임
아버지의 죽음앞에서의 서성임
회칙을 요구하는 형제들 앞에서의 서성임
이 서성임이 프란치스코성인을 더욱 인간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앞에서, 하느님의 뜻앞에서는 단호한 성인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프란치스코의 서성임이지만, 이런 인간적인 성인의 모습이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료들에게도 프란치스코는 엄마가 되어주고 아버지가 되어 주는 조건 없는 사랑 !
그 사랑에 루피노? 형제는 엄마,아빠의(프란치스코) 순종으로 수치심도 없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은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사람들 야유에 움추리는 그 모습을 보고 프란치스코는 뛰쳐 올라가 옷으로
감싸 주는 그 사랑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프란치스코도 肉 의 유혹에 이끌린 자기 모습을 보고
그의 동료 들에게 Forgive me ! 외쳐대는 광경에 겸손하고 가난한 모습을 보았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이라는 그 장면!
프란치스코는 젊음의 청춘도, 부모님의 배려도 다 버리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빠져 그 십자가 오상의 사랑에 감격하시어 짐승? 같이
울어 대시는 그 모습이 거룩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칸이 되어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르게 됨을
감사드리며 순간 순간을 살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