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폭설이 내린 대지위에 겨울비가 내리는 밤
빗소리에 잠을 깬 나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가슴속의 언어들을 꺼내어
내영혼의 처소에 불을 밝히신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일생에 꼭 한번 편지를 쓴다면
손 떨림 없이는 펴보지 못하는 당신의 사랑을 써보고 싶습니다.
황송하고 염치없는 간망에 불사르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며
고통의 즙으로 펜을 적셔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를 쓰고 죽고 싶습니다.
당신은 측은한 마음으로 철부지 같은
나에게
광야의 바위에서 귀한 광맥을 찾아내는 광부와도 같이
불가능의 바위에서 가능의 샘물을 길어 올리도록
나의 일상과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 선하신 당신을 발견하도록
기도를 가르쳐주셨으며 말씀과 성체로 길러주셨습니다.
당신은 사랑 지극한 아버지의 자비가
드러나도록
아버지로부터 받은 힘으로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그 힘을 사용하시지 않고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하느님의 가난을 배웠고
겨울 나목처럼 벌거벗고 추위를 타는 나를 위해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십자가의 신비는
신이 없는 땅엔 사랑이 자랄 수 없음을
몇 번이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고귀한 금강석에 한줄기 금이
가버린 듯 아깝고 애처로운 상흔은
견딤과 기다림과 힘을 내려놓는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해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 낙조 후의
바다 드넓은 갯벌에 홀로 서서
얼마간 지쳐있는 나를 봅니다.
물안개 속 달덩이처럼 솟아있는 등대같이
길 잃은 이들을 위해
표석으로 서계신 당신을 봅니다.
온갖 피조물 안에 담겨진 당신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봅니다.
그리고 오직하나 진리로 남아계신
당신을 봅니다.
진실을 변경할 수 없어서 사랑을 그만두지 못하고
그리움의 오솔길을 타고 간 추운 말씨와
비오는 길목의
손 시린 회상을 당신께 드리며
노도에 휩싸인 바다의 저면에도 심히 고요함이 있듯이
체념과 통곡의 몇 고비 격랑에도 아랑곳없이
자꾸 솟구쳐 오르는 질기고 서러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바치며
사랑과 자비의 푯말을
남은 여정의 길목에 이정표로
꽂아두려 합니다.
주님!
눈보라 속에서
정녕 꺼지기 쉬운 모닥불을
영의 손길로 밑불을 일구어
주소서
낙망은 일몰과 같은 것
몇 번이라도 새롭게 갈망의 불을 피워
나의 겨울을 막아주소서
당신이 이
땅에서 들려주신 거룩한 말씀을
내 영혼에 담아 낱낱이 간직하게 하시어
추위를 타는 영혼들에게
또 다른 예수가
되어
당신이 가신 그 길을 걷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는
푸른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새처럼
기쁨과 자유의
날개로
당신께 날아가렵니다.
2016. 1.29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