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 라우렌시오의 자선 (Charity of St Laurence:1615)
작 가 :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Bernard Strozzi : 1581-1644)
크 기 : 캠퍼스 유채 119X160cm
소재지 : 이태리 로마 고전 미술관
성인 공경은 가톨릭교회의 자랑스런 전통 중 하나이며 성인은 그가 살던 시대에 하느님을 증거 했던 사람들이며 증거자로서 가장 확실한 것은 순교자들이기에 초세기 성인들의 대종은 순교자들이었다.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기에 초세기 성인들의 대종은 순교자들이었다. 그런데 순교자들 가운데서도 좀 특별한 삶을 살다가 순교한 성인이 있는데 이 성인이 바로 성 라우렌시오이시다.
그는 삼세기 초 (225-258) 오늘 로마 제국의 영토로서 오늘날 스페인에 속해있는 자라고사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다행히 훌륭한 영적인 스승으로서 후에 교황이 되신 식스토 2세에 의해 로마의 일곱 부제중 하나로 임명되었다.
부제직이 교회 안에 시작된 것은 교회가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있었던 실수를 인정하고 이것을 고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생겨난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부제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 가난한 신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는데, 인간적인 한계 때문인지 그리스 계통에서 신자가 된 과부들 중 자기들이 유다 계통의 과부들에 비겨 홀대를 받고 있다는 불평을 하게 되자 이것을 깊이 깨달은 교회가 일곱 명의 부제들을 뽑아 이 일을 맡김으로서 부제직이 시작되었다.
덕스러운 교황 식스토 2세의 부탁으로 부제가 된 성 라우렌시오 역시 젊은 나이였지만 복음을 정확하고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부제직을 맡았다.
당시 교회는 시작되는 교회이고, 교회의 확장이나 유지를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이 너무 명백했기에 그가 이 직책을 맡았을 때 새로 시작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과 자기에게 맡겨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 중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그는 조금도 주저 없이 가난한 사람을 도움을 첫 번 사명으로 여겨 서스럼 없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으며 특히 교회가 지닌 값진 성구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교회가 지닌 보화들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처럼 그가 맡은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교회의 재산에 눈독을 들인 당시 집정관이 교회의 보물을 달라고 요구하자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집정관 앞으로 데리고 가서 이들이 바로 교회의 진정한 보물이라고 말했다.
그의 순수하고 통쾌한 태도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히는 좋은 증거가 되었으나 당시 집정관은 그것을 자기 몫으로 만들기 위해 재산 유용 혐의로 라우렌시오를 체포해서 고문했다.
당시 교회가 시작되던 시기여서 정치적인 힘이 없었기에 라우렌시오는 무고하게 체포되고 최고의 형벌인 석쇠 위에서 불에 굽히는 고통을 당했으나 그는 초연히 이 고통을 이기며 순교했다고 한다.
항상 이런 선행에는 선의의 과장된 표현도 등장하는 법인데 라우렌시오가 석쇠 고문을 당하는 동안 그는 미동도 없이 초연히 이 고통을 견디면서 불을 더 강하게 해서 구우라는 부탁을 할 만큼 대범했다고 한다.
성 라우렌시오는 초대 교회의 성인들을 언급할 때 항상 첫째로 언급되던 성인인데 이것은 교회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했던 당시 교회의 수준, 즉 가난한 사람의 교회가 되기 위해선 어떤 희생이나 포기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건강한 교회의 신호이다.
작가는 이태리 제노아 출신으로 진작부터 예술에 대한 소양이 발견되면서 이 길을 걷기위해 당시 부유한 도시 환경에서 르네상스 기품을 발전시킨 베네치아에 가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베네치아 화풍의 화려한 색깔 처리와 대범한 붓놀림으로 작품을 시원하고 상쾌하게 만드는 기법을 익힘으로서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다.
초기에 그는 당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역사화나 신화를 주제로 한 우의적 작품, 정물화 등에 몰두 하다가 카푸친 프란치스칸이 되어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나 다른 신심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그의 분방한 성격과 작품 경향은 카푸친 공동체에 부담을 주었기에 그는 수도회를 떠나 교구 사제로 남으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성 라우렌시오의 생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이기에 그들을 도움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란 확신으로 이 주제에 대한 작품을 여러 장 남겼다. 그가 잠시나마 프란치스칸에 머물며 얻은 자기 나름의 신앙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성 라우렌시오가 붉은 부제복을 입고 왼손엔 십자가를 든채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보고 있다.
붉은 색 부제복은 그가 미래에 받을 순교의 상징이며 그의 청초한 얼굴은 그의 신념이 얼마나 복음에 바탕을 둔 순사한 것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준비한 것은 신자들이 모운 귀금속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교회가 전례에 사용하는 제구들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성 라우렌시오가 지녔던 교회의 본 모습 즉 교회는 가난한 사람의 교회이고 교회 최고 재산은 가난한 사람임을 파격적이며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몸집 불리기와 유지가 교회 지상 사명이 아니기에 교회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구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누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임을 알리고 있다.
성 라우렌시오의 이런 파격적인 나눔 앞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희망이 시작되고 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자기들의 최고 재산으로 여길 때 그 교회는 건강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교회로 남을 수 있고 건강한 신진대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많은 순간 교회는 자기 몸집 불리기를 최고의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여러 명목으로 신자들을 착취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어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복마전 역할을 하며 불명예에 빠진 적이 많았다.
이 작품은 성 라우렌시오라는 젊은 성인의 모습을 통해 교회가 허상에 빠지는 것을 도와주고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는 건망증에 빠졌을 때 교회에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좋은 각성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가 지난 세기 초 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혁명군들은 멕시코 재산의 75%를 소유함으로서 멕시코의 가난 탈출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교회 재산을 몰수 하는 것으로 혁명을 성공시켰다.
성 라우렌시오는 교회가 제도화되어 힘이 커질수록 빠지기 쉬운 타락의 위험에서 헤어날 수 있는 자기 정화의 차원에서 꼭 필요한 기억을 우리에게 남길 수 있는 좋은 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