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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jpg


제    목 :  종교 재판을 주재하는 성 도미니코(Saint Dominic presiding over an Auto-da-fe 1493-1499)

작   가  :  페드로 베루게테 (Pedro Berruguette 1450-1504)

크   기  :  목판 유채 154 X 92cm

소재지  :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Prado) 미술관


몇 년 전 “세상과 교회의 대화”라는 주제로 개최된 회의에 참석하신 현대 가톨릭 윤리신학의 대가이신 베르나르도 헤링 신부는 기조 연설에서 유럽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 가톨릭 교회와의 대화를 시도하고자 모인 대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가톨릭 교회는 유럽사회 문화 형성에 끼친 자기들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반면 세상은 교회가 유럽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관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유럽 역사에 남긴 자신의 과오를 겸허히 인정하고 용서 청하는 일방, 세상은 교회가 인류사회에 남긴 건전한 노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측의 이런 태도 표현은 삼천년대를 시작하면서 교종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세상을 향해 하신 사과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이천년 교회 역사에서 세계 인류에게 끼친 끔찍한 상처와 피해로 고백하신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마녀사냥이며 이것은 중세에 극성을 떨었지만 그중에서 종교재판의 암묵적 그림자는 극도의 제도화된 우리 교회 안에 아직도 잔존할 수 있는 암적인 요소이다.


교회가 제도화 되고 대형화되면 봉사를 외치는 권위는 변질되어 무소부재의 권력의 양상을 띌수 있는데 가톨릭 교회는 어느 종교 보다 더 강한 조직이 되면서 부작용으로 파생될 수 있는 것이 순종의 이름으로 권력의 표현을 더 하기 쉬우며 이런 관점에서 종교재판의 역사는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로 변모되기 위해 항상 예민하게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종교재판은 원래 12세기, 교황 루치오 3세(Lucio III, ?~1185)가 이단으로 지목된 카타리(athari)파를 숙청하기 위해 시작해서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는데, 특히 스페인에서는 종교재판이 대단한 기세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야만적 행위를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처음 종교 재판은 이단자만이 아니라 스페인에 정착하고 있던 이슬람들과 유대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프로테스탄트를 탄압하는 방편으로도 이용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은 1834년 이사벨라 2세 여왕 때에 법적으로 종식되었기에 그전까지 합법적으로 운영되던 종교재판소의 피해는 말할 수도 없었다.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은 역사에 간혹 등장하는 폭군이나 정신 나간 왕들과 같은 한 사악한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가르치는 가톨릭교회라는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면에서 어떤 이유로라도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교회의 수치요, 인류 사회에 남긴 엄청난 그림자였다.


종교재판의 기억이 교황님의 사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우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비슷한 종교인이기 이전, 한 인간으로서 실격의 존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종교재판이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정화의 차원이라는 무지와 광기에 빠진 시대풍조에 편성해서 종교 재판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종교재판의 시작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성 도미니코가 시작한 것 같은 왜곡 과장의 흑색 선정용 작품을 남겼으며 이것은 잘못된 교회 측의 태도에 편승해서 어떤 역사적 사건 보다 더 힘있게 사람들을 종교재판의 광기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둔갑되면서 교회가 종교재판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는 것은 참으로 맑고 정직해야 할 종교 집단이 진실을 추구하는 이 세상 어떤 집단 만도 못한 허구적 바탕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런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미니코 성인은 로마의 스페인 총독 아들로 태어나 발렌시아 대학에서 수학한 뒤 성직자가 되어 평생 이단과 맞섰으며 도미니코 수도회를 창설했다. 성인은 교회가 쇄신되기 위해선 성직자들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또 당시 부패한 교회 현실에 실망한 사람들로 구성된 알비 이단을 극복하기 위해선 성직자들의 신학교육을 강조하고 당시 사치와 부패로 멍든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  탁발 수도회 다운 검박한 생활을 강조했다


그러나 언제나 교회 권력을 복음과 혼돈함으로서 교회의 이익을 추구하는게 곧 복음의 실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도미니코 회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도미니코 수도자들이 당시 교회 안에 창궐하던 이단들을 박멸하기 위해 설치된 종교 재판소의 운영을 맡으면서 자기 수도회 뿐 아니라 교회의 위상에 먹칠을 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중세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교회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시작한 잔인한  살인 기관인 종교재판소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로 노력해야 하는 수도자들이 앞잡이로서 주역을 맡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도미니코 수도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성인들을 통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 이전 유럽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프랑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성인은 자신의 수도자적인 명성에 힘입어 십자군 운동에 모병관으로 활동했는데 참으로 현대적인 시각에서 성인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성인은 십자군 운동을 일으키는 교황의 뜻을 도우는 것을 수도자들이 해야 할 순종으로 생각해서 열심히 모병 강론을 하면서 구호가 “이슬람 교도 한명을 죽이면 직천당이라는 ” 참으로 너무도 비 복음적인 광기를 선전함으로서 십자군 모병에 큰 공로를 세우기도 했고 이것이 한때 교회 안에서 성인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한 사람인지 표현하는 좋은 증거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이태리 우르바노에서 고딕과 르네상스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유망한 작가로 당시 인기있던 주제인 종교 재판에 대한 작품을 여럿 남기면서 유명작가로 부상되었으나 바른 역사는 이 작품이 얼마나 역사적 바탕도 없는 황당한 작품임을 알게 만들었다.


종교 재판이 악명 높았던 이유는 죄가 없어도 일단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죄를 고백할 때까지 고문을 계속해서 죄인을 만들어 화형장으로 보내는 것을 자기들의 사명으로 삼았으니 이들은 하느님의 권위로 하느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을 조그만 양심의 부끄러움도 없이 하게 된 것이다.


성 도미니코는 일체 직접 종교재판에 관여한 적이 없는 성인이었다. 그가 교회 안에 퍼지고 있는 알비파 이단에 대한 염려와 극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종교재판과 같은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성 도미니코는 1221년에 세상을 떠났고 교회에서 첫 종교 재판이 시작된 것은1231년인 것을 생각하면 도미니코 성인은 종교재판과 무관하며 따라서 작품의 내용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도미니코.jpeg


도미니코  수도회의 창시자인 성 도미니코 데 구츠만(St. Dominicus de Guzman, 1170~1221)이 툴루즈에서 이단인 알비니파를 화형시키는 13세기 초엽의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전통적인 복장인 하얀 옷에 검은 망토를 두른 채 한 손에 백합을 쥐고 서 있다. 극단의 고행과 극기로 살아온 그의 삶을 반영하듯 여윈 모습이나 영적인 활력은 넘치고 있다.


종교 재판소의 재판정으로 보이는 놓은 곳에 성 도미니코가 여섯 명의 재판관들을 대동하고 앉아 있다. 아랫 부분에 위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두 명의 알비파 교도들이 벌거벗은 채 화형이나 교수형을 당할 준비로 기다리고 있다.


종교 재판소의 고문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죄인들은 화형이나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길 만큼 인간 집단이 만든 어떤 고문 기술보다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고문 기술을 종교 재판소가 개발했다.


그러기에 두 명의 벌거벗은 사람들의 모습은 곧 닥칠 화형의 공포에 절규하는 모습이나 불안과는 거리가 먼 체념 상태의 평온한 모습이다.


성 도미니코 곁에 어떤 재판관이 들고 있는 휘황찬란한 십자가 깃발은 이 재판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십자가 깃발이 펄럭이는 오른쪽 열린 하늘엔 재판을 끝낸 사람들을 화형 시키는 형장에서 나오는 희색 연기가 종교재판의 악취처럼 퍼지고 있으며 이 처참한 광경을 몇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그 아래 성 도미니코의 종교재판을 받기 위한  일군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교회가 만든 상식을 벗어나 사고방식이나 태도 중 오늘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 안에 잔재하면서 세상의 지성인들이 교회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가장 순수해야 할 종교 집단에서 어떤 인간을 하느님의 뜻을 독점하고 있는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여겨 무조건 그 뜻에 맹종하는 것을 복음적 순종으로 강요하는 건전한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다.


화형에 처해진 알비파.jpeg


아래 벌거벗고 서있는 두 사람은 곧 산베니토(sanbenito)라는 두건이 달린 통옷을 입고 등 뒤엔 “ 사형 선고를 받은 이단자 ” 라는 표시를 하고 단두대에 올라 교수형이나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말을 탄 사람이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 재판을 기다리는 소년, 부녀자를 포함한 일군의 사람들이 성 도미니코의 재판을 통해 화형과 교수형으로 이어질 죽음을 향한 행진을 기다리고 있다.


종교재판의 병폐는 결코 도미니코 회원 뿐 아니라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 회원들같은 동시대 탁발수도자들 뿐 아니라, 종교개혁 후 교회 개혁세력으로 시작된 예수회원들도  16세기 폴투갈의 세력을 업고 인도 고아(Goa)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성 도마 사도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인도 태생의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종교 재판을 실시함으로서 교회 안에 계속된 병폐로 존재했다.


또한 종교재판은 가톨릭 교회만 한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신교 지도자들도 했다. 자기들의 교리를 강화하고 절대시하기 위해 자기가 정한 신조를 믿지 않는 사람을 잔인한 고문으로 사형에 처한 것이 칼빈과 즈윙글리의 생애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칼빈은 자기의 견해와 반대되는 뜻을 표시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추방하거나 교수형에 처했다. 한 예로 세베루스라는 신학자는 스페인에서 자행되고 있는 종교재판에 실망을 느껴 새 복음 공동체를 만든 칼빈을 찾아 제네바로 왔지만 곧 체포되어 스페인에서처럼  화형을 당했다.


당시 칼빈이 신정 정치를 펴고 있던 제네바 시는 국가와 종교가 하나로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칼빈과 반대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렸을 뿐만 아니라 반역죄로 몰려 사형에까지 처해지곤 했다.


이것은 가톨릭의 문제만이 아니라 종교가 권력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진리라는 환상에 빠지게 될 때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제도와 법을 중요시하는 가톨릭교회는 이점에서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여러 도시에 고문 박물관이란 관광 장소를 발견할 수 있으며  대부분 종교재판의 흔적과 연루된 고문 시설이나 죄인이 아닌 죄인들에게 고통을 주던 모습이 전시된 곳이다.


이 고문 시설을 보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겨냥하는 종교가 어떻게 종교적 확신으로 이런 잔인한 일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왜곡하면서 까지 강조했던 종교재판이라는 너무도 예수의 복음과 반대되는 허구에 대한 진정한 사색이 따를 때 교회는 예수의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종교재판의 문제를 과거의 어떤 착각이나 실수로 돌리고 자기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양 맹신하며 살아갈 때 종교 재판은 오늘 우리 교회 안에도 재현되면서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만드는 암적인 독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중세 교회가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가 보여야 할 관용성과 편협성, 시대착오적인 법이나 규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교황님이 온 세계 인류에게 용서를 청하신 과거 부끄러운 종교 재판의 정확한 역사를 안다는 것은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 집단이길 바라는 현대 가톨릭 신자들이 꼭 해야 할 중요한 성찰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병의 치유를 위해 개발된 약에는 반드시 부작용이라는 항목이 있다. 병의 치유를 위한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다. 종교 재판은 이런 면에서 가톨릭교회가 존속하는 한 경계해야 할 우리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고 이런 부작용을 바로 알았을 때 지성과 이성의 가치와 중요성을 아는 현대인들과 선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 지난번 공의회는 교회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적절한 문헌을 두 개 반포했다. 비 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e)이며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은 비 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거룩함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들이 신(神)을 향한 타당한 접근법이라고 인정하며 특히 그리스도교의 뿌리로서 유다교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하고 있고, '반(反)유다주의(Anti-Semitism)'를 강력하게 단죄하고 있으며, 종교자유에 대한 문헌은 인간 양심을 도덕성의 기본 규범으로 선언하며, 인간 인격의 존엄성과 권리들을 주장하고 있으며 , 이것은 또한 온갖 형태의 차별을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헌이 발표되었다고 종교재판의 악행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 재판이 가톨릭의 부패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된 개신교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재판의 악행이 있었다는 것은 제도적 종교가 숙고해야 할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종교가 성장 과정에서 영글어진 전통이나 교리를 절대화 할 때 항상 종교는 편협성과 폐쇄성에 빠지게 되면서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나 단체에 대해 공격성 광기를 띄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은 심각한 상처를 받으면서 종교가 인간 삶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제나 편견속에 묶어두는 족쇄 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가 지닌 권위의 양상이 인간 삶을 파괴할 수 있는 대단히 부정적 차원의 권력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했을 때 교회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교회의 회생에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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