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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쉬고 있는 사도 요한(14세기 초반)

  가 : 콘스탄즈의 하인리히

  기 : 높이 141Cm, 목재

소재지 : 벨기에 안드베르펜 미술관

 

요즘 길을 가다보면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당 앞에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혹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나 포스터를 자주 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어떤 개신교 목회자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명동 거리를 지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내게는 볼썽 사나워 보이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구호를 외치며 하는 이상한 선교방식이 정말 필요한 지 물어보았다. 그분의 대답은 삶에 실망하여 생명을 끊고 싶은 유혹에 빠진 사람이 이런 것을 보고 교회를 찾아 새 삶을 사는 예를 간혹 볼 수 있기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몰랐던 현실에 눈뜨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수도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가는 사람으로서 교회의 사목이라는 것이 가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특별히 지친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너무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위안을 얻고자하는 목적보다 실망이나 부담감을 느끼고 떠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마디로 예수를 가르치는 교회가 예수의 모습, 특히 위로자로서의 예수를 가르치지 못하고 힘겨운 수준의 삶을 강요하는 윤리 교사로서 처신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사랑 이야기를 아무리 해봐야 이것이 몸으로 와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터인데, 교회는 사랑의 복음을 외치면서도 정작 이런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지 못한 채, 자기도취 수준의 최면 상태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적어도 시각적으로나마 예수님이 인간을 따뜻하고 푸근하게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성미술이 교회 안에서 복음 선포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프랑드르라는 오늘날 벨기에와 네델란드 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독창적인 화풍의 진원지에서 활약한 작가이다.


로마와 전혀 다른 지역 정서를 바탕으로 이태리 중심의 화풍과 다른 자연 친화성 화풍을 창조하였다. 이 작품 역시 단순한 목각 작품으로 신앙의 핵심인 사랑의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학이 빠질 수 있는 현란하고 복잡한 언어가 아닌, 지극히 단순한 인상으로,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의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진면모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예수님과 사도 요한은 모두가 알다시피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하지만 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가운데에서 조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통으로 지닌 복음 선포의 사명에서 바라볼 때 좀 예외적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사도 요한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어린 제자였으며 다른 제자들이 모두 기혼자였던 것과는 달리 그는 독신자였다. 


이 작품 속의 예수는 복음선포에 몰두했던 20대 후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제자인 사도 요한은 10대 후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사도 요한은 어떤 사명감으로 예수를 따랐다기보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읍하여 마치 자신을 특별히 사랑해 주는 형을 따르는 동생처럼, 맹목적일 만큼 순수한 자세로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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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요한은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신체적 피로, 혹은 정신의 긴장이나 걱정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나 마음에 위로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몹시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존경스럽고 믿음직한 형과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동생의 모습이다.


요한은 제자단에서 수석 제자인 베드로나 야고보나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와는 다른 형태의 제자였다. 다른 제자들은 스승의 복음 선포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으나 요한은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제자로서,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동행하려던 제자였다.


 요한복음 사가는 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예수님의 만찬 때에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요한 20: 21) 


요한은 거창한 사명을 지닌 제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수덕 신학의 차원에서 겸손하다는 제자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처지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한 마디로 사랑을 충만히 살았던 제자의 한 명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의 교사나 스승이 아니라 사랑을 체험하며 살았던 증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진면모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예수의 제자를 수평적인 면 보다 수직적인 관계성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더 예수님의 제자에 가깝고, 검은 옷을 입은 성직자 보다 붉은 옷을 입은 성직자를 더 복음적이라 여기는 것이 몸에 베었다. 이것은 단순히 신분 위계와 연관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는 예수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미숙하고 잘못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것을 보완한 것이 수덕적인 용어 ”겸손“이나 ”작은 자“라는 용어일 것이다.


그러나 수직적 사고방식에 묶여 있는 한 아무리 수덕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이를 깨달을 수 없기에, 우리가 보는 예수님 제자로서의 실제 삶은 예수의 참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심하면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교회 안에 머물면서 만나게 되는 위선적인 모습들은 바로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는 요인이나 교회에 대한 거부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수직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는 교회 풍토의 허구성은 무엇인지 발견하게 만든다.


요한에게 있어 예수님의 존재는 기적을  행하고 바다를 잔잔하게 만드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자신이 고단하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좋은 형님이시다. 그 옆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고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끼는 그런 형의 모습이다.


교회는 항상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여러 미사여구를 사용해 강조하지만, 이런 말만으로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신뢰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도록 교회가 보여줄 때  교회는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능직을 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에게 매혹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리고 있다.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이런 모습은 갈수록 사라지고 수직적 사고 안에서 언어유희 수준의 사랑 표현 방식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런 분위기가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


사도 요한이 느끼는 사랑에서 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를 보호해주시고 사랑해 주실 분이시다. 그리고 이 것을 굳게 믿고 있는 표시로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틈도 없이 한 몸처럼 붙어 있다.


요한은 자신의 손을 예수님 손에 얹어 놓고 있다. 즉 자기의 모든 운명을 예수님의 뜻에 맡기는 극단적 의탁의 표현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은 요한 보다 좀 연상이라는 것 외에 어떤 위엄이나 권력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10여년 먼저 태어난 형님인 것 외에 아무 것도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요한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신앙에 맛들이기 위해서는 형님같이 편안한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실천의 좋은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윤리 학자같은 권위적인 예수의 상에서 편안하게 다가오는 형님과 같은 예수의 상으로 변해야 하는 데 이 작품은 이런 관점에서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큰 친근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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