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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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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길 떠나는 가족(1954)

  가 : 이중섭(1916-1956)

  기 : 종이에 수채(10.5cm X 25.7cm)


요즘 같은 환절기에 실내에만 있다가 밖에 나가면 실내와 전혀 다른 외부 온도로 당황할 때가 있다. 이런 계절의 저 기억너머로 6.25전쟁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한국 전쟁의 기억은 벌써 7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 있다.


단일 민족 국가 중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 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도 못하는 그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전쟁은 참으로 깊은 슬픔, 증오, 통한의 주제로 남아 있다.


한국 전쟁은 단순히 남과 북이 싸운게 아니라 북한에는 중공군과 러시아 군도 가세했으며 남쪽에서는 16개국이 참전해 6만명 가량의 외국 군인들도 사망했다. 민간인 사망은 남한이 38만 명정도이고, 북한은 자료를 밝히지 않았으나 남북이 합쳐 대략 100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3차 세계 대전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이렇기에 6.25에 대한 정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오죽하면 세계적 작가인 스페인의 파블로 피카소도 그 멀리서 한국 전쟁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 전쟁”이라는 작품을 남겼겠는가? 그는 이 작품에서 무구하고 천진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야만적인 무기를 든 전쟁광들에 의해 살해되는 모습을 그려 6 25의 참상을 온 세계에 전달했다. 현대에 와서 6.25에 대한 사진과 자료가 새로이 발견되면서 6.25의 참상 고발은 더 구체화 되고 있다.


이 땅의 반 고흐라고 불리는 이중섭 작가도 여러 작품을 통해 이 어려운 전쟁의 참상에 노출된 삶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는 어떤 예술가도 표현하지 못한 훈훈한 인간애와 사랑의 삶을 그의 작품을 통해 남겨놓았다. 그는 교회 바깥에서 크리스천적인 사랑의 가치를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반 고흐는 스스로 개신교 목사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고, 일생 예술을 통해 신앙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으나 이중섭 작가는 세례를 받은 적이 없는 한마디로 비 크리스천이었던 사람이다.

 

다만 절친한 친구 중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으며, 특별히 돈독한 신앙심과 고귀한 인품으로 존경받았던 구상 시인과의 우정을 통해 가톨릭 신앙에 대한 감동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함경도 원산 부유한 가정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 덕분에 평양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데이고쿠 미술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중섭은 자유로운 기질에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 외골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무엇보다 그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서 성서가 말하는 어린이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야수파 화풍에 심취해 진한 감정이 담긴 결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화풍을 창출했다.


이무렵 작가는 부인이 된 후배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나 한국인과 결혼시킬 수 없다는 신부 쪽 가족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사코가 결혼을 위해 원산까지 찾아와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마사코와는 평범한 부부관계를 넘어 순수하면서도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가정을 꾸렸다. 특히 마사코는 동경의 재력 있는 가정의 딸로서 가톨릭 신자였기에, 식민지 통치하에서 한국과 일본 국적의 어려운 관계를 승화된 사랑의 관계로 이끌 수 있었다.


해방 후 북한이 공산당 통치하에 놓이게 되자 부르주아 계층으로 분리되던 가정 배경과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편견으로 평범한 생활이 어려울 것을 예견한 그는 월남해서 대구 부산 제주도를 유랑하며 초라한 생활을 하게된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들은 순수한 사랑으로 극심한 가난이 주는 장애를 잘 극복했으며, 제주도에선 은인의 배려로, 비록 마련한 함께 눕기도 빠듯한 단칸방 생활이었지만 더없이 행복한 삶을 꾸렸다.


그의 작품에 유난히 어린이가 게를 잡아 놀고 있는 것이 많은데, 이것은 작가가 서귀포에서 아들과 함께 놀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더없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남편과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자기 삶의 기쁨과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을 작품 활동을 통해 표현했으며 이러한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승화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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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의 인생과 작품 전체를 압축하고 요약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제는 너무도 단순하고 선명하다. 삶의 자유를 찾아 가족들을 동반해 북한 탈출을 시도했던 피난민들이 모여서 아비규환의 양상을 보이는 원산항에서 용케 군함에 실려 갖은 고생 끝에  부산에 도착한 기억이 주제이다.


이 고통스러운 탈출을 작가는 너무도 낭만적이며 기쁨의 모습으로 포현하였다. 이는 그의 자유로우면서도 맑은 성품을 보여준다. 자신의 앞날에 드리워질 어떤 그림자도 의식하지 않는 맑은 성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하느님의 보호를 굳게 믿는 어린이의 천진한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어린이에게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작가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동반한 이 여행은 더없이 행복한 것이었다. 그의 예술세계는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영양실조가 된 아이들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 친정으로 보낸 후 혼자 생활하면서 아들에게 보낸 엽서의 그림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태현에게,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 너희 친구들도 모두 건강하니? 아빠도 건강하다. 아빠는 전람회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아빠가 엄마,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만 몸 성해라.”


이 편지에서 이 작품의 성격과 작가의 감회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황소, 어린이들 그리고 가족은 동화적 성격이 강한 너무도 단순하면서도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집약과 같다.


작가가 끌고 가는 황소는 작가가 대표적 주제로 그린 것이며 암울한 조국의 상징이다.


황소처럼 순박하고 힘 있는 우리 민족이 교활하고 사악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갖은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언젠가 다시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이며 이 황소가 바로 작가의 인생 자체였다.


작가가 몰고 가는 마차를 탄 두 아들은 아버지가 몰고 있는 마차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기쁘다. 큰 아들은 앞에서 복숭아 한 다발을 소등에 얹고 자신의 손에도 소담스러운 복숭아 다발을 들고 더 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막내는 뒤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며 희희낙락하고 있으며 아내 남덕은 행복한 표정의 두 아들 사이에서 너무도 기뻐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소고삐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서 더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 모두는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행복에 겨운 모습이다.


작가의 작품에 복숭아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바로 동양적 무릉도원 개념에서 정착된 행복의 상징이다. 이 가족들의 행렬 위에는  한줄기 푸른 구름이 이들의 여행을 축복하고 보호하듯 떠있다.


가장인 작가는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에 상상도 못할 어려움이 기다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면서도 희희낙락의 모습인데 ,이것은 하느님이 자기 가족들을 보호하시리라는 믿음의 확신을 연상시킨다.


형식적이고 시시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 삶의 온도차에 따라 희노애락의 감정에 휘말리지만, 하느님을 바로 믿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의 기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데, 자기 가족의 현실에 더 없이 만족하는 작가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를 연상시킨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탈출13:21)


작가가 가족들을 일본에 보내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혼자 남아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 때 작품은 팔리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작품을 구매했던 사람들 중에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작가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에 있었다.


몇 푼의 그림 값이 생기면 아내에게 송금하기보다 먼저 그동안 신세졌던 친구들을 위한 술값으로 쓰다 보니 항상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작가는 돈독했던 구상이 결핵으로 투병 중이란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서 복숭아 하나가 덜렁 그려진 종이를 내밀며, 이것 먹고 힘내어 빨리 일어나란 말로 친구를 격려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그의 인생에 있어 복숭아는 현세에 필요한 모든 행운의 상징물과 같았다


그의 영원한 절친이며 순수한 영혼으로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구상 선생은 그를 회고하는 글에서 그림에 대한 작가의 열정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호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무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잠시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캔버스나 스케치 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배갑, 은종이에다 그렸다.”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도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프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말년에 그는 계속되는 가난과 인간관계의 악재를 겪어야 했다. 아내인 마사코는 수입이 없는 남편을 돕기 위해 생활비에 보태라고 일본 책을 사 보냈다. 당시 읽을 것이 변변찮던 우리 사회에서 이 책들은 고가에 팔릴 수 있어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는데도 그것을 심부름한 사람이 착복함으로서 그의 꿈은 허망하게 깨졌다.


이런 일들은 일본인인 아내에게 황소의 상징인 한국인으로서 그의 체면에 부끄러움을 남겼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가족들이 있는 일본으로 갈 수 없다는 자괴심에 가벼운 정신 이상 상태를 보이면서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되뇌기도 했다.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 먹고 놀고 다니며 홋 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참으로 수도승 같은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너무도 순수한 자기 고백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구상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작가에 대한 감회를 남긴다


“중섭은 쾌쾌히 말해 천재로서 시적인 미와 황소 같은 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용출하는 사랑의 소유자였다...그는 그와 접한 모든 인간에게 무구하고 훈훈한 애정을 분배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맑고도 뜨거운 애정을 금수나 초목에 이르기까지 쏟아서 그들 존재들의 생동하고 어울리는 모습들을 힘찬 화력(畵力)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의 생애는 전쟁,가난,피란,잔병과 같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너무도 단순하면서 간절한 소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당신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소.” 이 너무도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의 인생은 이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그들이 바라는 희망의 열차를 타고 있다고 여겼기에 행복했다.


반 고흐는 목사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픈 결심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나 교회가 지닌 위선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해 목사의 길을 접고 예술을 통해 하느님을 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성서를 내용으로 한 성화는 한 점도 그리지 않고 일상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느님의 발자취를 그렸다. 그는 일생동안 한 점의 작품을 겨우 판매할 수 있었을 만큼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의 사후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으면서, 어떤 목사나 성직자 보다 더 하느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한 예술 선교사가 되었다.


작가 역시 길지 않은 50년의 인생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지낼 수 있었던 7년을 제외하고 여러 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악재와 고통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어떤 인간 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고 후대인들은 작가가 남긴 작품을 통해  고통의 어두운 기억들이 아닌 격조 높은 삶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6.25라는 큰 고통의 한가운데서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을 겪으면서도 이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인간적 맑은 성정과 사랑이 성서의 다음 구절을 굳게 믿은 크리스천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심할 수 없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앞에 계시오니 무서울 것이 없나이다.”(시편 23)


오늘날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적인 사랑과 기쁨,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많은 경우 매끈하고 번들거리는 말로 전하는 설교형 복음이 듣는 사람에게 공허한 메아리나  실망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오늘날 우리 종교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삶의 활력을 선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성서의 다음 말씀을 어떤 명강론 못지않게 감동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루카 6:20)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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