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빈민식당 (Mensa dei poveri : 1889)
작 가 : 푸스테리아 아틸리오 Pusteria Attilio (1862-1941)
크 기 : 캠퍼스 유채(205 X 136cm)
소재지 : 이태리 밀라노 브레라(Brera) 미술관
도시 국가로 시작된 이탈리아는 어느 나라에도 볼 수 없는 다양성이 있기에 많은 관광객들에게 대단한 매력을 주는 곳이다.
천년 이상의 전통이 있는 우리 불교는 건축이나 탑파 제작, 탱화 등을 통해 불교 미술의 탁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으나 재료의 한정성 때문인지 표현의 다양성에 있어선 가톨릭 예술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탈리아라는 국가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이 1870년도 이태리 통일 이후였기에 그전까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도 자기 나라 국명을 몰랐고 그냥 자기 살던 지방 이름을 사용했다. 이렇게 도시 국가로 살아가던 이탈리아는 180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독립 운동에 눈뜨게 된다.
주위 프랑스 오스트리아, 남쪽엔 스페인 등의 침략으로 속국의 처지에 있다가 1870년 독립을 이루면서 한 나라가 되었고 이렇게 통일은 되었으나 큰 국가를 건설하기 처음인 이탈리아는 대단한 혼란을 겪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경제 파탄이 생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우리로서는 상상이 어려운 인구의 거의 절반이 이민을 떠나는 혼란이 겹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이태리 국내에서 과거 상상이 어려웠던 여러 변화가 생기게 된다. 농촌에서 직장을 찾아 도시로 시골뜨기, 목동 어부들이 몰려오면서 도시는 혼란스럽고 비참한 환경으로 변했다.
도시에 몰려든 이들이 정착할 수 있는 것은 걸인이나 윤락업, 운이 좋게 얻는 것이 일용직 노동자였으니 당시의 비참함은 오늘 우리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처지이었다.
오늘날 북유럽의 부유한 도시로 특히 남성 패션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밀라노 역시 도시의 자부심이 완전히 무너진 도시가 되었으며 오늘 밀라노의 도심으로 산듯하게 자리 잡은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는 직업을 찾지 못한 걸인 부랑자 윤락여성들의 집합소였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사명감으로 여겼던 프란치스칸들은 이 지역에 식당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식탁이란 뜻의 Mensa”의 시작이 된다.
프란치스칸들은 그전에도 수도원 마다 여분의 식사를 준비해서 허기져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국가적인 혼란에 의해 배고픈 사람들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비참한 현실에서 이 요청에 응하기 위해 빈민식당이 대형화되고 조직적으로 운영되면서 갑자기 생기기 시작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이것이 이탈리아에서 근세 프란치스칸들의 이미지 쇄신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즉 프란치스칸들은 어렵고 배고플 때 자기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천사와 같은 집단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근년에 와선 외국인으로 불법체류하고 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큰 의지가 되고 있다.
이 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렵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기에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의료 봉사, 직장 알선, 심리상담 등 사회 정착 훈련 등의 여러 복지가 동반하면서 참으로 인간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이제 이 식당은 세상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어둠속에서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정착 되었다.
작가는 이태리 통일 전후 이 지역에 있었던 빈민식당을 통해 신앙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어느 종교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배고픈 사람에 대한 배려는 신앙의 중요 선업임을 강조하지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이면에 있어 탁월한 면이 있다.
즉 배고픈 사람은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에게 배고픈 사람을 볼 때 예수님 보듯이 해야하 며 이들을 돕는 것은 예수님을 돕는 것과 같다는 혁명적 가르침으로 이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감동을 주어 프란치스칸의 밝은 이미지로 정착되었다.
마태오 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심판 기준은 바로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마태 25,35-37)” 사람을 예수님을 대하듯 대했는지가 유일한 기준이었다.
성서에 있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루카 6:20)는 산상 수훈의 말씀은 좀 생경스럽기에 듣기에 어색한 것일 수 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이 성서의 말씀이 현실임을 느낄 수 있다.
성서는 구체적으로 배고픈 이를 외면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 너에게 남는 것은 다 자선으로 베풀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지 마라.”(토빗 4:16)
“배고픈 사람을 서럽게 하지 말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화나게 하지 마라.”(집회 4,2)
“배고픈 자가 먹는 꿈을 꾸어도 깨어나면 계속 속이 비어 있듯이, 목마른 자가 마시는 꿈을 꾸어도 깨어나면 기진한 채 여전히 목이 타듯이, 시온 산을 치러 나온 모든 민족들의 무리도 그렇게 되리라.”(이사 29,8)
이 식당의 이름을 식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은 이들을 위해 식탁만 준비해두면 여러 은인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서 이 식탁에 올리면 수도자들은 이것을 분배하는 일을 하는 게 전부이다.
즉 세상 많은 선의의 사람들의 고귀한 지향을 필요한 배고픈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프란치스칸들은 자랑스러운 사명감으로 실천하고 있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나눔을 통해 밥상 공동체의 인간적인 냄새를 서로 나누는 관계로 될 수 있다.
우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찬 식당이다. 이 식당에서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은 배고픈 사람의 허기를 덜어주고 이것을 통해 삶의 의욕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가장 절박한 배고픈 상태에 있는 사람인데도 표정은 그리 비참하게 보이지 않는다. 모인 사람들의 계층도 너무 다양하다 머리가 희긋한 늙은이, 곁에 눈망울이 똘망한 앳딘 소년이 음식을 먹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인들의 모습도 간간히 보인다. 배고픈 처지의 사람들이니 그들의 매무새 역시 후줄그레한 초라한 모습이 정상일 텐데 여기에는 그런 서글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남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옷이나마 단정이 입어 세상 사람과 다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이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세상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과 다른 모습이다. 세상 잔치는 초대한 사람과 신분적으로 비슷한 사람이 초대받기 마련이다. 부자나 권력가들의 초대는 그 사람의 수준의 사람들이 초대되고 있으나 이 식당에는 배고픔을 해결한다는 것의 동질성으로 초대되었으며 이들을 초대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초대를 받았다는 당당한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으로 앉아 있다. 복음서에서 몇 번 언급되고 있는 ‘빵을 많게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식사를 끝낸 듯 출구를 향해 돌아서 떠나는 부인이 있다. 검은 외투를 입고 머리의 흰 수건을 쓴 뒷모습의 단정한 모습의 부인이다. 이 여인이 이 식당을 찾기 까지 삶은 참으로 열악한 인생이었으나 이제 이 부인은 식당을 통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했기에 어떤 사람 못지않게 안정되고 단정한 모습이다.
이 여자는 이제 이 사랑의 식탁에서 사랑이 든 음식을 충분히 먹고 생기를 얻어 각박한 삶의 현실을 향해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반대편으로 잠든 아기를 안은 부인이 자리를 찾고 있다. 이 부인은 이 식당에서 자기의 가장 소중한 자식까지 먹일 수 있는 2인분의 식사를 위해 자리를 찾고 있다.
아이의 옷이 붉은 색인 것은 이 어린이가 가난한 어머니를 만난 불운의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마련한 귀한 식탁에서 마음껏 자라 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좋은 재목감임을 상징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식당은 배고픈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세상 수준에서는 불행한 인간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이 세상 어디서도 체험하기 어려운 귀한 사랑의 선물을 마음껏 나누고 즐기는 곳임을 알리고 있다.
인간들의 잘못된 삶의 태도에 의해 오늘도 극단의 가난 속에서 인간 다운 최소한의 권리도 누릴 수 없는 인간들이 늘어가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복지정책은 한계가 있기에 복지 국가에도 이런 어두운 곳은 있기 마련이다. 마치 오늘 밀라노의 가장 중심부인 그곳에 명품을 휘감은 부유한 족속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빈민식당 제도를 통해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 는 체념을 뛰어넘어 인간 삶의 질을 높힐 수 있는 생명의 식당이 인간들의 선의에 의해 현실화 될 수 있음을 알리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성 미술은 천상의 성인들의 재현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어두운 곳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서 더 감동적이며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런 식당의 착상이 프란치스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많은 교훈을 주는 것이다. 세상엔 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많은 조직이 있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 이런 곳들을 통해 나온 많은 제안과 시도는 서글프게도 탁상공론 수준이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로 꼬리를 내리는 것이 너무 많아 아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외면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던 프란치스칸 시도가 성공한 것은 가톨릭 정신이 허황한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적응에 노력할 때 얼마나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지 알린 좋은 예로 볼 수 있으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성 미술의 중요성과 함께 인간들의 삶의 공간에서 음지로 여겨지는 곳에서도 아름다움의 원천으로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을 알리고 있다.
“우리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름다움이 필요합니다. 미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속에 기쁨을 안겨주고, 시대를 초월하여 각 세대를 감탄 속에 일치시키고 연결시키는 고귀한 열매입니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에서)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 삶의 어두운 현장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는 영적 심미안을 키워주는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