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 토비야와 천사 (1470- 1480)
작가 : 안드레아 베로키오 (Andera Verrochio : 1435- 1488)
크기 : 템페라 목판 84 X66cm
소재지: 영국 런던 국립 미술관
오늘 가톨릭교회 안에 있는 새로운 움직임의 하나는 성서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성찬 중심의 신앙에서 이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서 신앙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여러 성서 공부 과정과 수도승 전통에서 영글은 성독서(Lectio divina)에 까지 광범위하게 성서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으며 어떤 평신자들은 성서필사를 통해 성서를 가까이 하고 맛 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구약성서에 있어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으나 제 2정경에 속하는 토빗기에 대해선 큰 비중을 두지 않는데, 이것은 교훈적 내용이 빈약한 가정사들의 지루한 나열로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성서에 포함시키지 않을 만큼 박대를 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대 개신교의 명망있는 신학자인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 은 토빗서야 말로 성경중에서 지루한 내용으로 일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대인들에게 대단한 매력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여러 다양한 분야를 제시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성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가족에 대한 고상한 가치, 삶의 유머와 냉소, 교육적인 오락과 같은 것이 평범한 과정으로 전개되면서 사람들을 감동으로 끌어가고 있다.
토빗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신앙인의 가정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여느 착한 신자처럼 아버지 토빗은 “일생을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었다.” (토빗 1:3) 그는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의 십분의 일을 고아와 과부들, 그리고 이스라엘에 몸부쳐 사는 이방인들을 위해 사용했다.( 1: 8)
그런데 어느 날 밤 토빗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눈에 참새 똥이 떨어지면서 그만 실명하게 되었다.
토빗은 이런 불운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할 만큼(토빗 3: 1- 10)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인다.
어느 날 토빗은 아들 토비야를 불러 이웃 동네 친구에게 맡긴 돈을 받아오라고 보낸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 길을 떠나기로 했으나 , 초행인 토비야에겐 길잡이가 필요했는데, 이 순간에 마침 젊은이의 모습으로 서있는 천사 라파엘을 만나게 되고 , 믿음직하게 보이는 그의 인상에 토비야가 길안내를 부탁했을 때 라파엘은 기꺼이 승낙하면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작품은 토비야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 떠나는 여정에 천사 라파엘이 동행하는 것을 보이고 있으며 이 훈훈한 내용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작품화 되었으나 이 작가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다.
작가는 르네상스의 황금시기에 피렌체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회화 뿐 아니라 조각 모쟈익 판화 등에서 대단한 역량을 보이자, 그 주위에 재능이 있는 많은 제자들이 모이게 시작했고 그 제자 중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
우리에게 “모나리자” 와 “최후의 만찬”으로 이름만이라도 너무 익숙한 그는 화가이기 이전 만능인으로서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로서 탁월한 면모를 보였는데, 베로키오는 이런 준수한 제자를 가르치면서 그 제자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를 키우는 처지가 되었다.
토빗서에 등장하는 라파엘 천사는 그 이름의 의미가 “ 하느님의 치유”이듯 영적 치유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점에서 그리스도의 역할과도 비길 수 있다
여기에서 라파엘 천사는 눈먼 아버지의 명을 따라 먼 길을 떠나는 토비야를 도우는 안내자의 역할로 나타나고 있다.
천사는 토비야 보다 좀 크게 그려지면서 그가 연약한 토비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라파엘은 어버이처럼 자상한 눈빛으로 자기를 믿고 따르는 토비야를 바라보는 데 이 모습에서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들이 티그리스 강가에 도착했을 때, 큰 물고기를 발견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토비야에게 천사는 그것을 잡아 쓸개와 간과 염통을 가지고 떠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알리자 토비야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물고기를 잡아 필요한 부분을 챙겨 떠나게 된다 ( 6: 6)
라파엘 천사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토비야는 천사의 도움이 있기에 낯선 길에도 조금의 두려움 없이 든든한 마음으로 여행하고 있다
천사의 명에 따라 잡은 물고기의 내장이 자기에게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면서도 천사를 신뢰하기에 그것을 들고 천사를 따르고 있다
천사를 바라보는 라파엘의 표정 역시 더없는 신뢰의 모습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세의 나이로 바로 베로키오 공방에 들어와서 조수 생활을 12년간 하면서 기량을 키우게 된다.
천재적인 자질이 있는 소년이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 푸른 창공을 한없이 나는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상할 수 있었고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다빈치의 생애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베로키오는 여기에서 토비야 역의 모델로 애제자인 다빈치를 선택했다
이것은 한 작품 안에 스승과 제자의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천사의 인도로 여정을 시작하는 주인을 따르는 앙증스러운 개가 등장하고 있다.
개는 어느 문화권이던 그 충직성으로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로 인정받고 있는데 , 성서에서는 여기에만 개가 등장하고 있다
베로키오는 이 부분을 애제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맡겨 그리게 했다
자신은 애제자를 모델로 토비야를 그리면서 돈독한 사제간의 인연을 표현하고 제자에게는 충견을 그리게 함으로서 스승 제자 충견 사이에 신뢰와 충실이라는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예나 오늘이나 능력을 인정받는 인기있는 스승 밑에 많은 제자가 모이듯 베로키오의 공방에도 많은 제자들이 모였으며, 주문을 많이 받는 스승은 자기가 그것을 모두 처리 할 수 없기에 제자들에게 맡기고 작품의 마무리를 자신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작품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절묘히 조화된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너무도 정확한 성격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길 수가 없고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한 점 한 점 보석과 같은 인정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이 작품은 대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천사의 안내 속에 미지를 향해 떠나는 토비야
이 주인을 충실히 따르는 개의 모습은
하느님을 향한 순례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일 수 있다.
시편 23편의 내용처럼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움이 없노라.“
르네상스 시대에 토비야는 여행을 하는 아들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했으며, 이 주제 의 성화 앞에 아들의 무사한 여행을 비는 부모들이 기도하는 예가 많았고, 이 작품은 당시 피렌체 시에서 라파엘 대천사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어떤 신심단체가 자기들의 경당을 위해 의뢰한 작품이다.
토비야는 채취한 물고기 내장으로 실명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염통과 간을 이용해서 마귀를 물리침으로 착한 아내 사라와 혼인을 하게 된다.
그녀는 악령의 장난으로 일곱 번이나 혼인을 했으나 계속해서 신방에 든 신랑이 즉사함으로서 불운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토비야의 도움으로 악령의 사슬에서 벗어나자 행복한 부부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토빗서 8장은 사라와 토비야의 혼인식날 밤의 모습을 너무도 아름답게 전하고 있다
두 젊은이는 다 힘겨운 인생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어려운 처지였다
토비야는 연로하고 가난한 처지에 실명까지 한 아버지를 모셔야 하고, 사라는 아름답고 용기는 있으나 일곱 번이나 악령의 장난으로 결혼에 실패함으로서 극단의 절망상태를 살아가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를 내어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불길한 전력이 있는 사라를 아내로 맞고자 하는 토비야나 결혼에 대한 극단의 두려움을 느끼는 사라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자기들의 결단이 아니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극단의 신앙행위임을 전하고 있다.
토비야가 라파엘 천사의 처방대로 물고기의 간과 염통을 꺼내어 향의 잿물에 올려놓고 그것을 태우자 악령들이 다 도망치면서 사라는 자유의 몸이 되어 토비야와 신방에 들어가게 된다.
둘이 부부로서 첫 잠자리를 시작하기 전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아내 사라에게 기도를 권한다.
서로가 일생을 지켜야 할 부부로서의 우정과 신뢰를 하느님께 약속하고 도움을 청하는 아름다운 기도를 바치게 된다.
“저의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토빗 8: 3. 7-8)
이 작품 안에 작가는 토빗서 전체에 함축되어 있는 하느님의 뜻에 더 없이 충실하고, 그분의 도움에 모든 것을 다 맡겼기에 행복한 크리스챤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는 행복한 의인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한 것이다.
“ 마치도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인양
제 때에 얼매 내고 잎이 아니 시들어
그 하는 일마다 잘되어 가도다.“(시편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