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435)
작가 : 로히르 반 베이덴 (Rogier van der Weyden : 1400- 1469)
크기 : 목판 유채 : 2.2M X 2.6M)
소재지 :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Prado) 미술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크리스챤 성화의 첫 번 주제였다.
그런데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리시는 그리스도로 구분되었고 , 뒷부분은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 작가의 기량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에 많은 작가들이 이 주제에 접근했다.
작가는 15세기 중엽 네델란드 화단을 주름잡던 화가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작가와는 달리 생전에 이미 그의 작품이 스페인 , 프랑스 독일 이태리에 소개될 만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이처럼 작가는 젊은 나이에 이미 명성과 재산이라는 두 토끼를 잡았으나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유행하던 신심 운동에 심취하면서 자신의 신앙체험을 이 작품을 통해 표시했다
이 작품은 오늘 날 벨기에 속한 루벵(Louven)이라는 도시에 있던 석궁수 조합 경당 제단화로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작가의 기량 뿐 아니라 그 시대를 풍미하던 영성운동인 근대적 신심(Devotio moderna)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기에 그 시대 그리스챤 영성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15세기부터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심운동이 성직자 주도가 아닌 수도자 평신자들의 자발적인 주도로 일어나게 되는 데 ,이 운동의 중요 관점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 운동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감성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서 지성을 동원한 머리의 신앙이 아닌 가슴에 감동으로 와닿는 신앙에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관점은 현대 시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나 당시 교회 현실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전까지 교회는 교계제도의 권위 강조의 관점에서 ,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것은 바로 교회 성직자들의 권위를 세상 황제나 왕들의 권위 보다 상위이거나 아니면 동일선상으로 강조하는 근거 제시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이 교회를 하느님의 이름을 건 세상 권력 집단의 양상으로 변질시키면서 교회의 부패와 성직자들의 횡포를 재촉하게 되었기에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하는 요인이 되었다
뜻있는 평신자 수도자들은 이런 교회의 부패되고 왜곡된 모습을 안타까워 하면서 교회가 복음적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선 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토마스 아 캄피스(Thomas a Kempis: 1380- 1471)가 쓴 준주성범(Imitatio Christi)이었다.
이 책은 크리스챤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으며, 62판이 재판되었고 현재 95개 언어로 번역될 만큼 크리스챤 영성의 탁월성을 표현한 것인데 작가는 이 작품을 바로 이 영성의 관점에서 제작했다.
여기에서 성모님의 고통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겨냥하는 크리스챤 영성의 기본으로 제시되고 있다.
깍은 듯이 준수한 외모의 등장인물 , 슬픔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얼굴 표정들 , 적,백,청색의 기본 색조를 너무도 잘 사용해서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이 되었다.
성서에 보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리는 순간에 등장인물은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코메데스 두 사람 뿐이며 성모님에 대한 언급도 없다 (요한 19: 38- 42)
그리스도 뒤편에 있는 사람은 요한복음 3장에 나타나고 메시아를 찾고있는 구도자의 전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니코메데스이다.
그의 구도적 열정을 표현하는 듯 붉은 옷을 입고 있으며 , 그 위에 사다리에는 그의 시종인 듯한 젊은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리는데 도와 주고 있다.
밑부분에 화려한 금빛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아리마테아의 요셉이다
주님께서 갑자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기에 그분의 장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 요셉은 자기를 위해 준비했던 무덤에 주님을 모셨으니 당시로 보면 상당한 재력가였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 옆에 점잖은 모습의 남자가 흰색의 항아리를 들고 서있는데, 이 사람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수행원이며 이 항아리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할 때 사용할 향이 들어 있다
격렬한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여인은 마리아 막달래나이다.
이들 가운데 , 숨을 거두신 예수님이 계신다
비록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으나 더 없이 정갈스러운 모습으로 애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매달렸던 T (타우) 형태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휘어진 몸매는 이것이 석궁수 형제단의 제단화임을 암시하는 듯 활의 모습처럼 휘어져 있다.
화살을 앞으로 보내기 위해 활은 휘어져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휘어진 모습은 구원이라는 높은 가치의 삶으로 인간을 올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또한 중세기의 석궁수들은 직업 군인들로서 불의와 싸운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활 모양으로 휘어진 주님의 몸체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키워주는데 일조를 할 수 있었다.
요한 복음 예수님의 매장 기사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코메데스가 등장하나 ,이것이 중세기로 내려오면서 신심적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성모님이 등장하게 되고 요한 복음 19: 25에 등장하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 “ 클레파스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래나가 등장하게 된다.
작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는 한 가족이 되었음을 알리는 차원에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도와 친분 관계를 가졌던 여러 여인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왼편으로부터 성모님의 사촌인 마리아 클레오파스가 등장하며 그 곁에는 항상 주님을 떠나지 않았던 사도 요한이 있고 그 옆엔 녹색의 옷을 입고 눈물이 뚝뚝 흘리는 너무도 사실적인 모습의 마리아 살로메가 있다.
또한 기절한 성모님의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당신 아들의 활처럼 굽어진 몸과 같은 방향으로 굽어져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류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신 성모님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다.
주님 주위에 많은 슬퍼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 관객들도 자신을 이 등장 인물 중의 하나로 만들어 그리스도 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15세기 초엽부터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성모님의 인간적인 면모도 과감히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아들 예수의 죽음앞에 “기절하신 어머니 성모”의 모습이다
에베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된 후부터 성모님은 비록 인간이시나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특별한 여인”으로 묘사되면서 인간적인 고뇌에서 해방된 “천상의 영광을 누리는 여인”의 위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여기 성모님은 여느 어머니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 너무 상심해서 기절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모님의 이런 묘사는 그후 신학에서 고통이 하느님과의 일치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차원이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혼절한 성모님 주위를 둘러싼 여인들 중 위쪽의 클레오파스의 마리아의 슬픔은 대단하다
금방 화면에 뚝뚝 떨어질 것처럼 그의 얼굴엔 너무도 선명한 눈물 자국이 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삶이란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고, 예수를 닮기 위해선 예수님 십자가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교회에 풍미하던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위선성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가능케 했던 주님 수난의 복음적 의미를 준주성범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에게는 그의 천상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그의 십자가를 지고자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고난 받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잔치상의 친구들은 많으나 , 금식의 동료들은 적습니다.
예수와 더불어 즐기려 하지만 , 그분을 위해 고통을 받겠다는 사람은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빵을 나눌 때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고난의 잔을 나눠야 할 때 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준주성범 2권 11장 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