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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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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오줌 속의 그리스도(Piss Christ, 1987)
   가 :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1950~​)
   기 : 사진, 1.52X1.02m



  십자가의 길(라틴어: Via Crucis)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가톨릭교회의 중요기도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보통 사순 시기 동안 매주 금요일과 성금요일에 행하며 성공회에서는 보통 사순절의 마지막 주인 성주간에 매일 행한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주님 수난에 대한 깊은 신심을 지니셨던 프란치스코 수도회 창설자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에 따라 당시 모슬렘의 지배 아래에 있던 성지에 가서 갖은 고통과 순교의 아픔을 감내하며 성지를 지켜온 프란치스코 수도회원에 의해 시작되어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2세(1730- 1740)에 의해 교회 전체의 신심으로 정착되었다.




이 기도는 주님이 수난 하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으신 빌라도의 관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타 언덕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14개로 나누어 주님 수난을 재현하며 기도하는 것인데, 어떤 것은 성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나 상식적인 상상력에 바탕을 둔 주님 수난 신심의 과장 없는 표현으로 오늘도 교회 안에서 사랑받고 있는 건강한 기도이다.





그런데 초세기에서 10세기까지 주님 수난은 일상 신앙생활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껄끄러운 면이 있었기에 수난의 고통을 최소화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현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이유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잘못된 이교도적인 이유에서였다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만왕의 왕이신데 어떻게 인간이 만든 형벌 중에서도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과 연관시킬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주님에 대해 무지하지만, 선의의 사랑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지혜로운 처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서에서 계속 십자가 이야기나 나오자 십자가는 그리면서도 고통과는 무관한 십자가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림으로써 예수님을 무대 위의 하느님으로 정착시켰고 이것이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아주 기본이 되었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가도 십자가는 보이는데 수난의 상이 아닌 복음에 나오고 있는 십자가의 한 부분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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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라는 형상에서 침대에 누운 것처럼 평안한 자세와 표정의 예수님이셨다.




헌대 12세기에 들어오면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효시로 한 탁발 수도회에서 예수님의 수난 신심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과거에 은페되었던 예수님의 수난 고통과 치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근년 멜 깁슨이라는 미국 영화 감독이 만든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란 영화는 바로 이런 탁발 수도자들의 십자가 신심을 형상화함으로서 많은 관람자에게 예수 수난의 고통과 치욕을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전까지 예수 수난 영화는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예수님의 수난이라면 이 감독은 오늘 십자가의 길을 십자가를 지시고 걷는 예수님의 참상을 재현한 것이었다.

과거가 예수님 역할의 배우의 연기였다면 여기엔 예수님의 골고타 언덕으로 이어지는 십자가 실상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이 감독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형구와 고문 도구를 정확히 공부하고 이것들을 영화에 등장시킴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예수님의 고통이 실감되는 것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시작된 십자가를 통한 수난 신심은 계속 성서 묵상과 인간적인 상상력에 의해 심화하면서 예수님이 인간적으로 겪으셔야 했던 수치심에 대한 것도 과감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칸들은 예수님의 수난 표현을 과거처럼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연기가 아닌 자기들이 매일 살고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 자리의 현장 체험을 재현하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너무도 현장감과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이 십자가 작품은 17세기 이태리의 인노첸시오라는 수사의 작품인데, 그의 심원한 수도자적인 묵상을 담았기에 한 십자가를 보는 면에 따라 미소와 고뇌, 죽음이라는 다양한 느낌을 주는 대단한 작품으로 오늘 아씨시 성 다미아노 수도원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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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심원하고 깊이 있는 모습이며 그 의미 정말 대단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 기도에도 나오는 기도문의 내용 중 10처에서 죄수로 군중들 앞에 옷을 벗기시고 살이 옷에 묻어나는 고통을 겪으셨다는 표현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충격성을 전하기 위해 십자가에 예수님을 충격적인 나체로 표현하기도 했다.

멕시코의 어떤 수도원 식당에 바로 이런 나체의 모습으로 제작된 십자가가 걸린 것을 보았으며 예수님이 나체로 십자가에 달린 것은 그리 많으나 여러 교회에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겪으셨던 인간적인 수치심과 치욕을 나름대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과 대조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표현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이면서 예수 수난을 강조하는 와중에 시행착오라면 신자들이 주님 수난에 대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으로 끝내지 수난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것은 아쉽지만 사실이고 이것은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이고자 하는 교회의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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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예술가 중에 좀 특별한 환경으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이었다.



온두라스 출신의 아버지와 쿠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증조부 중 한 명은 미국 철도 부설을 위해 끌려온 중국계 노동자임을 생각하면 그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도 소외계층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자기 출생 신분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하층 신분의 어려움과 고통을 현실적으로 체험하면 성장했다.





이런 신분이 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그를 불량소년이라는 음지의 인간으로 나아가게 했으며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마약과 폭력에 찌든 날을 보내다가 우연스럽게, 브루클린 미술학교를 거쳐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가 만든 작품 중에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기존 정서와의 혼란을 주게 만든 문제의 작품이다.



작가는 사진의 소재를 오줌 속의 예수라는 충격적인 제목으로 정하고 작업을 했다.



먼저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자기 오줌을 넣고 그 안에 십자가를 하나 담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오줌의 색깔이 십자가의 색깔을 변형시키면서 통념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되었다.



오줌과 십자가라는 상반되는 소재 때문에도 이 작품은 엄청난 반대와 비난에 봉착했다.

이런 대중적인 견해의 공통점을 바로 이 작품이 외설성을 띠면서 신성모독과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그 외 혐오감, 거부감 등 모든 부정적인 정서가 총동원되어 이 작품을 부정적인 여론몰이를 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작품이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반대의 표적이 된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시도한 직설적인 표현 방식은 오줌과 십자가라는 이미지 뒤에 숨은 의미의 다중성과 더불어 그의 작품만이 갖는 예술적 독자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의 출생의 현실이 보여주는 다층적 삶의 모든 이분법적 가치 체계화 그 의미의 틀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그의 작품은 화면의 충격만큼 진지하며 소재의 비천함만큼 아름다움을 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대에서 연출되는 마치 예수님이 수난극을 연출하시는 배우의 모습으로 등장하시는 예수 수난의 표현에 익숙한 처지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결으셨던 길과 골고타로 방향을 전환하면 이것이 결코 그렇게 충격적인 격렬한 반대의 정서를 주지 않고 십자가에 대한 의미를 더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하셨던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니셨다.


여느 인간들처럼 무력하게 체포되시고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길을 걷다 골고타 언덕에서 나신으로 인간적인 모든 자존심이 박살 나는 수모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군중들의 야유와 조롱을 받으신 분이시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단말마의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은 너무도 괴로우셔서 하느님께 절규도 하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겪으신 절망감은 이 세상 어떤 사형수도 겪기 어려웠던 절망감이었다.



사랑하던 가족이나 친구로부터의 배신이나 버림이 아니라 자기 삶의 모든 것이었던 자신의 전부와 같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절망감이었다.



인간이 극도의 고통을 겪고 죽는 순간이면 몸속에 있던 대변과 소변이 모두 배출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이다.

예수님이 인간이 겪으셨던 가장 어려운 것이란 표현 속에 이미 이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작가는 그전까지 어느 작가로 표현하지 않았던 바로 이면을 과감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종교계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종교 예술의 한계가 어디인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 작품이 오스트렐리아에서 전시되었을 때 그 도시의 교구장은 전시 중지 신청을 법원에 할 만큼 강한 거부의 태도를 보였고 어떤 분개한 군중들이 이 작품의 파괴를 시도코자 해서 이 작품은 일약 유명한 것이 되었다.



작가의 의도는 이해 못 하고 그동안 수난극을 연출하는 무대 위의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교육으로 정착된 형식적인 관념과 그냥 단순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크리스천 상징물로서의 개념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성숙한 현대인들에게 예수 수난의 진면모를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제시해서 충격의 거부감 속에서도 예수 수난을 무대에서 끌어내려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로 인도한 것은 신앙의 내용의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인위적인 것은 아무리 의도는 좋더라도 진리 추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교회 역사에서 선의이기 하나 오늘날에는 이런 것의 부작용을 평가할 때가 되었다.



오랫동안 교회는 자기가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교회를 포장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한 것이 드러나면서 교회에 대한 엄청난 실망 요인이 되는 현실에서 이 작가의 작풍에 대해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더 인간적인 매력을 줄 수 있는 신앙의 성숙과 쇄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신앙을 지켜준다는 이유로 금서목록을 정하고 엄격히 시행하는 때가 있었다.



교회는 신자들을 세속의 악습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했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로 이와 같은 금서목록은 해제되었다.

이것은 신자들이 아무 책이나 다 읽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개인의 성숙성을 인정하고 식별을 권고하면서 준 복음적 자유의 영역이다.



교회가 수 세기를 신자 보호의 명목으로 요구했던 금석 목록 해제는 성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증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테살 5,21)



교회가 신자들을 과보호하면 어린이로 남을 위험이 있으며 이것은 현대에서 종교인의 순수한 모습이 아닌 미숙하고 매력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가의 이 작품은 신성모독도 주님 수난에 대한 너무도 세속적인 표현도 아닌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신자들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기폭제로도 볼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인생을 살았던 작가는 보통 가톨릭 신자들을 묶어두던 무대 위에서의 수난극 연출하는 예수님이 아닌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의 한계성 안에서 엄청난 충격적 고통을 받았던 예수님이 자기의 주님으로 다가왔다.




예루살렘 삶의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서 인간적으로 가장 비참한 순간을 맞으신 예수님이 자기 삶에 더 와 닿았던 것이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무리한 생각이 아니고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경건하다는 크리스천들은 자기 신심에 도움이 되는 면만 보도록 하고 그런 경향에 치중하고자 하며 이런 사람들은 이 작품을 너무도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또한 많은 크리스천도 십자가를 귀부인들의 목에 걸린 단순한 장식 요소로 생각함으로 주님의 죽음의 실상에  있는 처지에 이 작품은 현실적으로 충격적인 면이 있긴 해도 이 방향으로 십자가에 접근한다면 현재와 같은 감상적 신심 수준의 십자가 이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작품에 대한 불같은 반대와 비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자기 의견을 표현했다.



“당신이 이 작품을 보고 충격받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당신이 지닌 십자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어떤 부정적 비판이나 불편은 당신의 편협한 십자가 이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오고 있으며 그러기에 나는 예수의 제자임을 의심치 않는다.”




이 작품은 어떤 부정적인 반응이 있더라도 성서의 다음 말씀으로 이 작품을 본다면 우리 십자가 신앙에 승화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온 세상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당신의 책임으로 여기시는 교황님은 미술에서도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이시고 있다.

정물화나 과거 수준의 성화가 아닌 현실적인 어려움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작품화한 것에 대단한 의미성을 부여하며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오늘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이민자들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을 전시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과 위로를 표시하고 계신다.

  교황님은 그분의 유명한 글 '찬미받으소서' 205항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 어떠한 체제도, 진선미에 대한 우리의 열린 마음,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에 응답하도록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어 주신 그 능력을 완전히 억누를 수 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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