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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부활하신 예수 (1521)

작    가 미켈란젤로 부요나오티(Michelangelo Buonarroti : 1475-1564)

재    료 대리석

소재지 : 로마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성당

 

   고대인들이 한결같이 생각했던 것은 인생의 허망함이었다. 죽음으로 끝나는 운명을 지닌 인간의 한계성을 절감했기에,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이런 한계성의 유일한 극복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살만한 사람들은 기념비를 세우거나 자기를 기억할 수 있는 어떤 기념사업을 남겨 자기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강력한 외적 과시와 자기최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이런 현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현상이었다.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죽음의 운명으로 끝난다는 것의 허망함을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중 유명한 것이 바로 호머(Homeros)의 작품인 일리아드 오디세이(Iliad Odyssey)이다.

 

  크리스챤 부활 신앙은 바로 이런 허망감에 대한 도전이며, 죽음과 운명의 미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큰 희망의 구체적인 제시라 볼 수 있다.

 

  1500년대의 유럽은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민족과 국가 간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생기는 잦은 전쟁에다,

종교개혁의 혼란으로 유럽 전체가 분리의 위기에 있었다.


  여기에 겹쳐 크리스챤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듯 만든 식민지를 통해 많은 새로운 것들이 알려지고 역사상 부끄러운 노예무역이 시작되는 한마디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사회적 혼란과는 반대로 예술 표현에 있어선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의 진면모와 아름다운에 눈뜨면서 대단히 풍요롭고 과감한 표현을 했다.

  

  어떤 면에서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극복이 어려운 삶의 현실에 찌들기보다 예술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이상 세계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에서 탈출하고자 했다.

    

  14세기부터 16세기 르네상스의 작가들은 그리스도의 신체적 표현을 대담하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에게는 도저히 표현할 자리가 없었던 신체적 표현이 인간 예수의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성을 부여함으로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나체를 표현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인간적인 친밀감의 표현으로 정착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지니고 사셨던 인간임에 대한 사색과 강조는 그전까지 천상적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의 표현으로 억제되었던 신체 표현에 대한 승화된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당시 희랍 철학의 영향으로 육체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그전까지의 육체는 죄와 유혹의 상징으로 위험한 것이기에 가급적 피하고 조심하는 것이 영적 삶의 기초로 여기게 되었고, 여기에 일조를 한 것이 바로 성직자 수도자들의 독신 생활이었기에, 성과 육체에 대한 극단의 부정적 견해가 교회 안에 만연했으나, 한편으로 지성인들 사이에 육체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퍼지게 되었다.

 

   당시 지성인들을 매혹시켰던 신 플라톤 철학에서는 육체의 아름다움은 영원 불멸의 상징으로 가르쳤기에 예술가들을 통해 이것이 성 미술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르네상스 정신에 투철했던 작가는 특히 이면을 작품 안에 도입해서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걸작인 인간 육체의 성서적인 면을 제시했다.

 

   작가는 이미 초기 작품인 피에타(Pieta)를 제작하면서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모습을 너무도 앳되고 아름답게 표현 한 것은 바로 이런 관점의 강조에서였다.

 

  상반신.jpg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당신이 달리셨던 십자가는 주인공이 부활함으로서 빈 십자가가 되었다 한마디로 죽음의 흔적이 지워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너무 젊고 아름답다. 요즘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세뇌시키고 있는 꽃미남의 모습이다. 과거 다른 작가들은 성서에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전하기 위해 그분 상처나 다른 것을 통해 고통의 상처와 죽음의 흔적을 남겼으나, 여기에는 전혀 죽음의 흔적이 없는 너무도 생기 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운 젊은 남자의 모습이다. 요즘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연예인들 중에 몸만들기로 만들어진 인조미가 아닌 정상적인 생활을 한 건강한 남자의 몸매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이 이런 건강한 남자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나면서 우리를 억압하고 있던 육체성의 부정적인 사고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있다.

 

   건강한 신앙과 성과 육체라는 것은 서로 상반되거나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상치되지 않고 조화를 이룸으로서 신앙의 생활화가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

 

  사순절의 독서에서 이샤야 예언자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 참혹한 고통을 받아 볼품없이 이지러진 주님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샤야 50 : 5- 7)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이런 고통과 속박의 흔적에서 온전히 해방되셨다.

 

   그분에게 있어 더 이상 고통과 실패와 죽음의 흔적은 있을 수 없고, 정상적인 남성에게서 볼 수 있는 흠잡을 수 없이 세련된 육체가 부활하신 그분이 보이는 생명의 완성된 모습이다.

 

   작가는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흔적을 십자가를 쥐고 있는 그분 오른손에 남기고 있다. 한마디로 이전까지 그분을 속박하던 모든 것이 이제 그분 손 안에 잡혀 있기에 아무 기능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분은 오른손에 세 가지를 쥐고 계신다. 그분을 체포해서 묶었던 끈과, 십자가에서 목마름의 고통을 겪으실 때 아래에서 주님을 조롱하는 몸짓으로 그분께 초와 쓸개를 올릴 때 사용했던 막대기와 이것을 적셨던 해면이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요한 19 : 28-30)

 

   이것은 주님께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던 상징이었다. 주님은 자신이 겪으셨던 어두운 심연의 고통을 한손에 간단히 쥐고 계시면서 착한 사람의 삶은 언젠가 영원한 승리와 성공으로 보답되어 다시는 악의 권세에 눌려 실패하지 않는다는 강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주님은 길지 않는 인생에서 그토록 자기를 괴롭히던 모든 기득권자들이 주는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열반과 의미적으로 통할 수 있는 해방자가 되셨다.

 

   부활을 알리고 있는 복음마다 목격 증인, 주님 부활을 확인했던 시기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은 부활 신앙이 결코 어떤 집단이 만든 신조나 여기에 세뇌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좁은 두뇌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리고 있다.

 

   그러기에 열반과 윤회나 환생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 작가의 작품은 조금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반신.jpg

 

  예수님의 삶은 주위 기성세력으로부터 도저히 인정을 받지 못한 그런 삶이었고 이것을 교회는 예언적 삶이라 부르며, 예언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삶은 소위 예술가들이 말하는 전위적(Avan- garde)인 삶의 최정상이었지만 교회는 항상 제도 유지의 차원에서 이것을 처리하고 수용했다.

 

   작가는 당시 위세를 떨치던 교황 율리오 2세의 적극적 신뢰와 후원을 받아 자신도 당시 교회의 노선이었던 반종교개혁 정책을 철저히 수용하면서 여러 작품을 제작했으나, 항상 문제가 되던 것이 바로 신체 표현에 있어 나체의 수용성이었다.

 

  이 작품 역시 이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그가 유명해질수록 이것은 더욱 더 구설수의 원인이 되었다.

 

   트렌트 공의회의 후속으로 이어진 교회안의 반종교개혁은 철저한 검열을 시작했고 작가의 작품역시 이 검열 대상이 되어 금속 가리개를 씌우게 되었다. 이 가리개는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 교회의 배려였다.

 

   작가는 이런 처사에 강하게 반발했으나 그가 죽은 후, 그의 작품성의 진가를 인정하던 제자들이 이 가리개를 만듦으로써 스승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작가의 걸작인 최후의 심판역시 작가 사후에 400명의 등장인물에게 다 가리개를 씌우게 만들었다가 지난 세기 이것을 복원하면서 작가의 의도대로 완전한 나체 상태로 만들고 이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그의 작품성을 기리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가리개는 해방자 구원자로서 그분의 시원한 모습을 가렸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언젠가 교회의 안목이 넓어지면 최후의 심판 벽화처럼 가리개가 교회에 의해 벗겨질 날이 있으리라 믿으며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 가리개를 자세히 보면 묶은 데가 없이 그냥 가려진 상태이므로 주님께서 관람자들에게 부활의 진면모를 보이신 후 승천하신 다면 자연스럽게 땅으로 떨어질 것임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사가 풀린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은 주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도구삼아 자기 이익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사악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님 부활은 결코 영생불사(永生不死)라는 인간들의 변함없는 바램의 크리스챤적인 주장이나 해답이 아니다. 크리스챤의 부활신앙이 여기에 머물다 보면 크리스챤의 삶 역시 이 세상 다른 종교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세상의 것을 가급적 등한히 하는 게 열심 한 것 인양 착각하는 이원론적인 태도에 머물 수 있으며, 이것은 오늘 크리스챤들이 각성해야 할 자기 쇄신의 중요한 관점인지 모른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나와 다른 어떤 타인(他人)이 아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라는 것은 내 육체성의 성서적 발견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등한히 여겼던 면을 너무도 명료히 제시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이 육체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영생불사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이기 이전, 현세 삶의 의미를 부활하신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그분 안에서 찾아서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파격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더 없이 친근하면서도 온갖 유혹과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데 힘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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