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자굴 속의 다니엘(1613)
작 가 :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1640)
크 기 : 유화 : 2.24 X 3.3M
소재지 :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역사에 나타난 여러 화가들 중에 루벤스는 여러 면에서 행운을 누리며 산 성공의 상징과 같은 화가이다.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작가가 태어나기 이전 개신교인 칼빈파로 개종했기에 서로 다른 전통의 신앙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당시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의 종교적 편협성과 광신적 분위기가 주는 갈등 속에서도 그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신앙태도를 익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는 자녀 교육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혜안을 지녔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당시 지성의 입문과 같은 라틴어를 배울 수 있었고, 어려운 집안 경제 사정으로 정식 공부는 계속할 수 없었으나, 당시 상류사회에 속하던 랄랭 백작 부인의 시종이 되면서 이들과의 교분을 통해 상류사회로 발돋움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가 접촉했던 상류사회 귀족들에게 그의 예술적 재능이 인정되면서 당시 프랑다스 지방의 유명한 화가였던 아담 반 노르트의 제자로서 예술 수업을 시작했고 앤트워프 (Antwerp)지방의 직업조합인 성 루까 길드(Guild)의 회원이 되어 작가로서의 기량을 키운 후 이탈리아로 가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풍을 익혔다.
이런 풍부한 수업과 여행을 통해 그는 역사, 종교, 인물 풍경화에 있어 막힘이 없는 대가로 기량을 발휘했으며, 그의 작품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화면에 가득 찬 생동감과 힘찬 선의 처리, 화려하고 대담한 색채 처리, 야성미와 관능미를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생명의 아름다움과 생기를 한껏 표현하는 것이다.
1605년 그의 나이 불과 27세에 예술가와 외교관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화려한 인생을 시작하게 되고, 그는 일생 동안 이 두 직분 사이를 오가며 대단한 성공을 거둠으로서 주위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삶은 한마디로 행운과 행복이라는 단어의 심볼 마크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유능한 작가와 외교관으로서 유럽 여러 왕가들, 귀족들과 깊은 교분을 맺을 수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작가의 기량을 한껏 발휘해서 많은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
“이태리 르네상스의 역사” 를 쓴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 1897)는 그를 가리켜 “천재적인 재능과 아울러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행운으로 어우러진 그의 삶에 참으로 어울리는 표현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동시대 작가로 화란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렘브란트(H .van Rijin Rembrandt : 1606-1669)와 삶에 있어 너무 극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에 버금가는 화가로 평가되던 렘브란트는 결혼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여러 아이들을 하나같이 어린 시절에 잃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용케 죽지 않고 살아 그에게 큰 힘을 주던 믿음직한 아들 티투스와 재혼으로 얻은 아내 헨드리스 마저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과 상실을 겪어야 했다.(성화해설 23번)
업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파탄으로 파산선고를 받으면서 자기가 애지중지 하던 작품들조차 빚잔치에 내어놓아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 가난한 유태인 거주 지역에서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쓸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여기에 비겨 작가는 6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다, 원만하고 분별력 있는 성격을 지녔기에, 당시 유럽의 궁정문제나 유럽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외교관으로서도 대단한 역할을 함으로서 유럽 왕가들과 끈끈한 우정을 맺을 수 있었고, 이들의 주문을 받아들임으로 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회적인 인정과 함께 가정적 안정 , 작품 활동에 있어 아무런 제약도 없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예외적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라파엘과 티치아노로 이어지는 이태리 르네상스의 화려함과, 자기 고장의 특징인 프랑다스 화풍을 완벽히 소화해서 독창적 화법을 창출함으로서 규모와 질에 있어서도 대단한 작품들을 창출했다.
그의 제약이 없이 열린 환경과 폭넓은 수용력은 대단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으며, 그의 작품 성향은 렘브란트의 초상화처럼 적은 것보다 작품의 규모가 클수록 더 멋지게 소화할 수 있어서 1634년 영국 왕실 연회장의 장식을 위해 제작한 9개의 거대한 천정화는 그의 막힘이 없이 호탕한 작품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오십대 초반에 상처(喪妻)의 슬픔을 당하긴 했으나 몇 년 후 엘레나 프르망이라는 16세의 앵두처럼 아름다운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 결혼 생활 역시 더 없이 행복했으며 이 사랑스러운 아내를 모델로 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겼다.
"모피(The Fur)"라는 작품은 바로 어리고 예쁜 자기 아내를 모델로 한 것이다. 목욕 후 생명감이 묻어나듯 풋풋한 몸을 고급 모피 코트로 감싸고 웃는 모습인데, 행복한 삶을 살았던 작가의 또 다른 초상화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다니엘서 6장에 나타나고 있는 내용인데, 이스라엘이 바빌론 속국이 되어 야훼 신앙을 포기하고 이교신을 믿어야 하는 유혹과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신앙이 투철한 다니엘이 왕궁에 들어가 왕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서 그의 영적능력을 인정 받아 왕의 측근으로 지내게 되었으나 시기하던 다리우스의 모함으로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다.
졸지에 당한 너무 기막힌 시련이었으나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지녔던 그는 실망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태연히 굴속으로 들어가 먹이에 굶주린 사자들과 하루 저녁을 지내게 된다 (다니엘 6장 18절)
다니엘의 신앙을 알아본 사자들이 그를 해치지 않았기에, 그 다음 날 사자 굴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을 본 왕은 다니엘의 신앙과 함께 다리우스의 모함을 발견하고,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내어 자유를 준 후 대신 모함한 작자들을 사자굴로 던지자 금방 사자들이 잡아 먹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났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생명과 죽음, 믿음과 의혹 , 의탁과 불안이라는 상반되는 모습들을 “키아로시쿠로 :Chiarosicuro)라는 이름의 명암법을 사용해서 표현했다. 어둠이 가득 찬 굴 안에 던져진 다니엘은 위에 뚫린 바위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있으며 그 주위엔 많은 사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다니엘은 사면초가의 상태에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인간적인 불안과 절망을 내딛고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16세기 말 이태리를 풍미하던 작가 카라바죠가 사용했던 빛과 어둠의 대비를 재치있고 완벽히 처리해서 생명이 찢길 비참하고 절박한 처지에서 하느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에서 믿음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위험 속에서도 무너질 수 없는 든든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다니엘 가까이 있는 사자는 그를 삼킬듯이 포효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리스챤 삶에 언제나 따르는 신앙 포기나 변절의 유혹에 대한 성서의 다음 교훈을 상기시킨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요.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요.” (1 베드로 5, 8-9)
다니엘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니엘의 인격은 빈틈없는 유일신 야훼 신앙의 바탕위에 다듬어진 인격자의 모습임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 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 뿐 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갈대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였다.”(다니엘 1, 4)
작가는 이런 다니엘의 모습을 이태리 르네상스 예술에서 정착된 균형 잡힌 몸매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르네상스 작가들이 받아들인 희랍 로마 예술의 표현방법이다. 희랍 예술에선 균형 잡힌 신체는 성숙하고 원만한 정신의 표현으로 여겼기에 여기 다니엘의 몸매 역시 완벽히 표현했다.
르네상스 이전엔 성인들의 모습은 천상적 존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창백하고 허약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믿음의 사람인 다니엘의 모습을 수려하고 늠늠한 이목구비를 갖춘 젊은이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서 전통적 종교화에서 벗어난 생명의 생기와 발랄함을 통해 신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인물들은 베네치아 학파의 대가였던 티치아노(Tiziano : 1488-1576. 8. 27)나 틴토레토(Tintoretto : 1518-1594. 5. 31)의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색채와 빛과 자유로운 채색법을 사용함으로서 바로크 미술의 감각적 풍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런 자기 방어의 수단도 없이 거의 나신인 다니엘이 걸친 흰색의 수건은 그의 깨끗한 영혼을 상징하며, 옆에 펼쳐진 붉은 천은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살아가는 그의 흔들림 없는 신앙을 상징하고 있다.
다니엘의 몸을 금방 삼킬 것처럼 우람찬 사자의 표현을 작가는 미켈란젤로나 티치아노의 기법을 사용해서 다니엘 보다 더 큰 형태로 표현하면서도 다니엘 앞에 유순하게 있는 사자들은 마치 다니엘을 헤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죽음의 공포가 아닌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생명의 안정을 드러내고 있다.
대단한 힘을 지닌 공격성의 상징이며 만나는 모든 상대를 다 먹이로 처리하는 속성을 지닌 사자들이 여기에서는 하느님의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듯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다니엘의 옆에 있는 사자들은 멀리서 오는 적들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파수병의 역할을 하듯 자기 방향으로 경계의 눈빛을 보이는 반면, 발치에 엎드린 두 사자들은 주인의 사랑을 갈망하는 강아지처럼 엎드려 그를 지키고 있다.
다니엘 예언서는 다니엘이 여러 어려운 처지에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뿐 아니라, 모함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전하면서 의인은 하느님이 지키시기에 어떤 어려움이나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니 두려워 말라는 격려를 주고 있는데, 이 작품은 강력하게 이것을 표현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 (시편 118, 6)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나는 아쉬울 것이 없노라.” (시편 23,1)
맹수의 왕인 사자가 하느님의 사람을 해치지 않고 지키듯 신앙으로 무장된 사람은 항상 하느님이 지켜 주신다는 강한 교훈성을 주고 있다.
시편 90편은 크리스챤들이 애송(愛頌)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 때 어떤 현세의 위기나 유혹도 극복할 수 있으니 , 조금도 두려워 말고 굳건한 믿음으로 현실에 담대하게 도전하라는 격려의 내용이다.
러시아에서는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들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시편을 적어 자기 아들의 전투복 주머니에 넣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 시편의 내용을 생기 있고 감격적인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존하신 님의 두둔 아래 사는 너,
전능하신 님의 그늘아래 머무는 너는,
주께 아뢰라, 하느님은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 ,
나는 당신께 의탁하외다 하고.
주께서 정녕 너를 사냥꾼의 올무에서
모진 괴질에서 구하여 주시리라 .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널 떠받고 가리라
너 살모사와 독사 위를 걸어 다니고
사자와 이무기를 짓밟으리라.”( 시편 90, 1-3: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