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와 아기 예수
작가 : 누볼로네 프란체스코(Nuvolone Carlo Francesco : 1609- 1662)
크기 : 31X 35cm 유채 판화
소재지 :개인 소장
성 안토니오는 교회 성인들 중 인기 있는 성인 중 한분이시다.
그러기에 유럽의 웬만한 성당에는 다 안토니오 성인상이 있다.
포르투갈 귀족 가문 출신으로 경건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하느님께 일생을 바칠 결심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했다가 1220년 모로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프란치스칸 순교자들의 유해가 그가 살던 도시로 왔을 때, 자신도 그들처럼 순교자가 되고픈 열정에 사로잡혀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했고 처음의 열정처럼 순교를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가 병을 얻어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에서 개최된 총회에 참석했다가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기 위해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감추인 것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교훈이 그에게 적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사제 서품식에 참석했을 때,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후부터 그는 사도적 활동에 투신하면서 불같은 열정으로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허약한 신자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주면서 그의 사목적 결실은 가히 기적으로 여길 만큼 대단한 것이 되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에 깊히 심취한 천상적 모습과 지상 인간들에게 애덕을 실천하는 차원에서의 모습을 너무도 잘 조화시켰기에 당대 사람들에게 대단한 감동과 사랑을 줄 수 있었다.
1226년 10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오늘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성인으로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의 영향에 의해 파도바(Padova) 는 많은 사람들이 회심함으로서 성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그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에서 축적된 사랑을 이것이 필요한 세상 사랍들과 나누는 것이기에 그가 수도원안에 칩거할수록 세상안에서의 그의 현존은 더 선명하게 되었다.
그의 불꽃 같은 인생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안타까운 36세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대성당에 모셔져 있는데 이 성지는 오늘도 많은 순례자들에게 성인에의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안토니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하였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오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애덕활동이 시작되어 오늘도 여러 나라에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하면서 복음의 진면모를 너무도 대중적으로 표현한 성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성인을 모델로 제작된 많은 성화의 표본과 같다.
프란치스꼬 수도복을 입은 성안토니오 아기 예수님, 손에 든 백합화는 성인의 초상에 등장하고 있는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성인은 다정스러운 자세로 아기 예수님을 왼팔로 포옹하고 있다.
성인이 아기 예수를 동반하고 있는 모습은 이런 전승에서 연유된 것이다. 성인을 존경하던 어떤 신자가 성인을 방문했을 때 , 이 신자는 아기 예수님과 이야기 하고 계시는 성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것은 성인은 설교자로서 바쁜 여정의 삶에서도 항상 주님과 더불어 그 안에 사셨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기 예수님은 책 위에 서 계시는데, 이것은 성인이 해박하고 명민한 천상의 지식을 지니셨던 교회 학자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책 위에 서 계신 아기 예수님은 성인의 해박한 지식은 인간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서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인의 생애에 많은 고행을 하신 분이었으나 많은 성화에서는 항상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화풍의 영향이었다.
바로크 예술은 (Baroque Art) 16세기 말 이태리에서 등장하여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된 화풍이며 , 교회 현실과 깊히 연관된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의해 교회는 많은 것을 잃고 권위가 실추된 처지에서 사람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선 교회의 위상이 힘있고 화려한 천상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보다 큰 하느님의 영광”의 실현을 목표로 창설된 예수 회원들에게 동감대를 형성하면서 이들에 의해 퍼지게 되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인의 주위에는 이 세상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치가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본향인 천상 세계를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즉 성인은 주님을 이 세상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만나고 있기에 더 없이 아름답고 상쾌한 모습이다.
그는 현실을 환상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성화의 근본인 진실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성인의 손에 들고 있는 백합화는 어느 성인의 성화에도 등장하고 있는 백합이며 하느님만으로 더 없이 풍요로운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꼬와 구분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등장시키고 있다. 외양으로 봐서 성 프란치스꼬와 성 안토니오가 구분되는 것은 안고 계신 아기 예수님과 손에 든 백합꽃이다.
이 모델은 후대 스페인 화가인 뮤릴로(Murillo: 1617- 1682)에게 전수되어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작품은 예술적인 가치보다 신심적인 가치가 더 큰 작품이다. 성인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진 교우들이 방에 모시고 기도하면서 신앙의 깊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의미의 대중성 성화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성인들의 무엇을 울리셨길래
성인이 될 수 있었을까...잠시 생각해보고 옮겨가요.^^
신부님메일주소를 몰라서 여기에 글드립니다. 제 주소 artijs@hanmail.net 입니다
스테파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