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바울로의 회심 (1542- 1545)
작가 : 미켈란젤로 부르나요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
크기: 프레스코 : 625 X 661cm
소재지 : 바티칸 성 바울로 경당
복음적인 가난의 향기를 잃으면서 고질적인 부패로 이어지고 있던 중세 교회에 말틴 루터의 종교 개혁은 참으로 충격이었다.
가톨릭 국가였던 북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위시해서 , 영국이 교회를 박차고 나가 신교도 국가가 되었다.
이런 변화앞에 가톨릭 교회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언처럼 유럽에서 잃은 것을 다른 곳에서 회복하겠다는 생각으로 남미, 아시아 선교에 전력을 투구하는 일방 교회 자체의 정화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교재판이라는 역사에 오명을 남긴 것도 있지만 성직자들의 쇄신으로부터 심지어 교회 미술에 있어 성서에 바탕을 두지 않는 지나친 과장을 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자체 개혁을 시도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교황 바울로 3세는 시스티나 경당의 "최후의 심판 "을 끝낸 작가에게 선출된 새 교황이 교황 복장을 갈아입을 제의방에 이 작품을 부탁했다.
이때 작가의 나이는 이미 75세 였으나 그 역시 교회 쇄신에 대한 갈망이 대단했기에 교황의 뜻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성서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 갑자가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 ( 사도행전 9: 3- 4)
교회의 박해자였던 사울은 이 체험을 통해 주님을 만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찬란한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작품은 박해자 사울에서 복음 사도 바울로로 변신하는 극적인 순간이다.
당시 작품을 제작하기만 하면 불후의 명작이 되던 작가는 교회를 쇄신하고자 하는 교황의 선의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작품 경향도 과감히 바꾸게 된다.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남긴 "최후의 심판"(성화해설 26번)과 비겨 보면 그 이해가 쉬워진다
르네상스 운동에 깊이 심취했던 작가는 인간 예찬의 극치를 표현하기 위해 희랍의 표현들을 과감히 도입해서 " 최후의 심판"에서는 등장 인물 전체를 과감히 나체로 표현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영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육체의 표현은 자제한 것을 볼 수 있다.
"최후의 심판" 에서 볼 수 있는 터질듯이 생기 넘치는 근육이 표현을 위시해서 육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경향은 많이 절제되어 표현되었다.
최후의 심판에서의 드러나고 있는 지나친 육체 예찬이라는 병든 인간성의 표현이 이 작품 안 에서 영적인 존재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는 면으로 치유되었다
자비 지극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박해하는 사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오신다.
천사들의 옹위 속에 큰 빛을 바울로에게 던지시며 내려 오시는 주님은 붉은 색깔의 옷을 입고 계신다.
이것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돌아가신 그분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자기를 박해하는 사람에게도 제외되지 않는 그분의 가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큰 빛으로 내려오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 세상의 모든 것은 새로운 질서를 찾게 된다.
사울로가 주님의 박해자로서 살아가던 모습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의 삶으로 변신하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변신의 모습이다.
자기의 주인을 땅에 떨어뜨리고 놀라 날뛰는 말의 모습은 죄의 삶을 청산하고 주님의 제자로서 변모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대단한 충격의 모습이다.
이것은 성서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 보라 ,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록 21: 3)
또한 사도 바울로가 강조하던 세례 신학의 정확한 표현이기도 하다
"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는 것처럼 ,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 4)
바울로의 회심은 단순한 사상적 변화가 아니라 인생 전체가 변화되는 것임을 이 장면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회심 당시의 바울로는 대단한 활기를 지닌 젊은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포악하게 신자들을 박해하고 이것도 모자라 피신하는 신자들을 쫓아 다마스코까지 추격하는 집념의 사나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기에 이 내용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에서 바울로는 항상 혈기왕성한 젊은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서 바울로를 당시 교황이었던 바울로 3세의 모습으로 그리는 대단한 충격적인 표현을 했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자유로움과 용기가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일생을 통해 당시 유럽의 실세였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교황청을 넘나들며 그들의 도움으로 작가로서의 대단한 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작가로서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대단히 중요시 했다.
한마디로 그는 예술가들이 인기 영하이나 자기 생존을 위해 큰 권력 앞에 보이기 쉬운 어용적인 태도는 철저히 배격했다.
교황 바울로 3세는 종교개혁으로 상처받은 교회를 치유하기 위해 일생을 노력했던 교황이었으나 그도 역시 어둠의 과거를 지닌 중세기 교황이었다.
홍수 후에 비가 그친다고 즉시 강물이 마르는 것이 아니라 , 아래쪽에는 홍수의 피해가 남아있듯 , 반종교 개혁을 통해 개혁의 기치를 든 교회 역시 얼마 동안 이 어둠을 품고 있어야 했다.
작가는 자신 안에 어둠을 품고 교회를 쇄신해야 할 교황에게 직격탄 같은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교황님, 이 세상 모든 인류를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목자로서의 당신의 임무를 시작하기 위해 교황님 자신이 먼저 회개하셔야 합니다.
말이나 법령으로 교회를 쇄신하는 목자가 아닌 예수님을 닮은 참된 목자가 되도록 하십시오."
바울로 3세 교황은 이 작품이 완성되기 1년 전 세상을 떠났기에 작가의 메세지를 읽을 수 없었으나 이 작품은 얼마 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위치의 성격상 이 작품은 교황이나 고위 성직자들 만이 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성격 때문에 보기가 그리 편치 않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이 작품이 공개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이 작품 앞에 서는 사람들은 작가가 교황에게 던진 메세지를 자기 처지에서 읽으면서 주님께로의 회심에 대한 강한 결단과 열정을 느끼게 된다.
전에 순례하던 곳들이 아련히 그려지고 그랬지요.
언제 부턴가 가끔 바오로 성인께 전구를 청해주십사 기도하곤했어요.